[2018. 08. 18 (토)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 행동' 시위]
시위에 개인사정으로 늦게 참여했기에 시위 자체에 대한 글은 그리 길게 못 쓸 것 같습니다만, 제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하루하루를 여성 혐오와 마주하며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몇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1. 시위에 참여한 이유
나는 ‘불편한 용기’ 팀이 주최했던 몰카 규탄 시위에 1차부터 4차까지 모두 참여하지 않았다.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타이틀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가령, 나는 지난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피해자의 sex가 여성이라서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여성으로 패싱되었기에, 즉 gender가 여성이기에 살해당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것에 입각하여 나는 여성 혐오를 생물학적 여성, 지정 성별 여성 뿐만이 아닌 트랜스 여성도 당할 수 있다고, 또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타이틀은 결국 트랜스 여성 뿐만이 아닌 다른 소수자 집단을 배제하는 데에 가담하게 되는데,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 혐오를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여성 혐오를 하게 되는 구조와 동일하게 작용한다.
내가 이번 시위에 참여한 이유는, 참여를 하는데 있어서 그 어떤 제한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안희정은유죄다 #사법부도유죄다
김지은씨는, 이미 예상한 결과였다고, 끝까지 살아 남겠다고 대중 앞에 섰다.
안희정 1심 판결에 대한 기사 댓글을 보면 여느 때처럼 몇 남성들이 김지은씨를 꽃뱀이라고 칭한다.
그들의 주장인 즉슨, “처음엔 성폭행이었다 칠 수 있어도 그 이후로는 충분히 싫다고 저항할 수 있지 않았나, 카톡 내용을 보니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성폭행이 아니라 불륜이다.” 라는데, 이 세가지만으로도 평균적인 한국 남성들의 사고를 알 수 있다.
다른 것은 설명할 필요성도 못 느끼겠는데, 카톡 내용을 걸고 넘어지는 행동 말이다. 나는 그 남성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군대에서 선임이 아무 이유 없이 당신을 폭행하고 협박을 했는데 그 당사자 앞에서 바로 저항하고 싫은 내색을 할 수 있을까? 구타를 당한 뒤 선임 앞에서 빌빌거리면서 선임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으면, 당신이 저항하지 않았으니 당신이 당한 폭력은 없던 게 되는걸까?
당신의 얼굴은 너무나 추악하다. 비단 김지은씨 뿐만이 아니다. 한샘 여성 직원, 양예원씨 등등, 당신들은 사과해야 할 상대가 무수히 많다.
권력 앞에서 굴복할 수 밖에 없던 여성들에게, 그 여성들이 권력자에게 저항하지 못한 상황을 들이밀며, “봐. 너도 즐겼잖아.” “봐, 이게 꽃뱀이 아니면 뭔데?” 하는 당신의 얼굴을 봐라. 당신은 그 어떤 사죄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3. “왜 피해자에게 피해자 다움을 요구하나요?”
시위에서 행진이 끝나고, 여성들의 자유 발언이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긴 머리에 모자를 쓴, 하늘하늘한 치마를 입고 나오신 분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일을 했던 카페 매니저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한동안은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서서히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게 됐고, 가해자를 고소했으며 법정에 서는 때까지도 가해자는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되려 자신을 꽃뱀이라고 모욕했고 주변인들은 끊임없는 2차가해를 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긴 싸움에서 승소하여 가해자를 징역 4년에 처하게 하는데 성공했다고 말했고, 그 순간 시위 참여자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나는 그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
“왜 피해자에게 피해자 다움을 요구하나요?
저는 법정에 서는 때, 머리도 까맣게 염색했어야 했으며, 옷도 우중충하게 입어야 했고 사람들 앞에서 피해자 다움을 보여야 했습니다.”
피해자는 계속해서 숨 죽여서 살아가야 하며 가해자는 당당하게 고개 들고 살아간다. 그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직접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그 사람 뿐만이 아니다. 피해자들이 살아갈 수 없게 만든 당신도 가해자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 그 옆에 있는 당신, 당신, 당신, 당신들.
4. 남성과의 연대
남성과의 연대에 대해서는 또 다른 글로 길게 서술해야 하겠지만, 나는 남성과의 연대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성은 분명 여성의 경험을 완전하게 공유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만이 페미니즘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에 대해서는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의견이 수없이 갈린다. 어떤 페미니스트는 이런 내 의견을 두고 흉자라고 하겠지만, 내 스탠스가 그들과 다를 뿐이다. 나는 남성 배제적인 페미니스트들을 욕하고 싶지는 않다. 끊임없이 논의하고 끊임없이 자정작용을 할 뿐이지, 내게 그들의 (남성 배제적인 페미니즘을 추구하게 된) 경험을 묵살할 권리는 없다.
토요일 시위에서, 같이 참여했던 남성 친구가 여성들의 자유발언을 들으며 눈물을 참지 못했던 그 순간이 글을 쓰는 와중에 계속 생각난다.
남성이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배우고 실천하는 것은, 여성들의 입장에서 매우 의심스러운 일임을 나도 알고 나 또한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날 그 친구의 눈물에서 진실을 봤다. 그의 터져 나오는 목소리가 그의 마음을 대변했다. 피켓을 들고 여성들과 함께 자유를, 권리를 외쳤던 그의 모습에서 나는 연대를 느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