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에는 어려워하는 구석이 있다. 문화생활의 한 범주로 예술을 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 특히 그림에 대한 이해도는 그리 높지 않다. 그림을 즐기기 위한 국내 인프라의 부족일까? 아니면 그림이라는 것이 애초에 우리들의 관심 밖의 문화생활인 것일까? 앤디 워홀과 산업 미술,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현대 사회의 기조가 수십 년간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술에 대한 고상한 이미지 역시 우리의 의식 속에 남아 미술에 대한 이해도를 낮춘다. 이는 우리와 미술이란 장르 사이 거리감을 조성한다.
인류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에는 다양한 기준에 의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미술사만큼 시대를 앞선 철학적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도 드물다. 어쩌면 철학과 함께 미술은 시대를 앞서나갔던 가장 진보적인 형태의 담론들일 것이다. 특히, 20세기 전후의 근대 미술사는 꽤 흥미로울 뿐 아니라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조원재의 <방구석 미술관>은 근대 미술사에 등장한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초보자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편안한 문체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이해하고 접하기 어려운 미술을 쉽게 풀어냈다. 예술에 대한 깊은 맛은 덜하지만, 예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측면에서는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다. 더욱이 저자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미술가들을 등장시키는 데, 이를테면 반 고흐, 폴 고갱, 피카소, 모네, 뭉크, 폴 세잔 등이 그렇다. 이들의 개인적인 삶과 이들 작품 속에 들어있는 의미들을 친절하게 풀어준다.
대표적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반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를 보면, 반 고흐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강렬한 노란색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반 고흐가 노란색에 심취해 있었던 점도 있지만, 그 당시 유행하던 술 ‘압생트’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압생트’의 주원료인 산토닌 중독으로 인해 황시증에 걸린 점도 부정할 수 없다. 황시증의 증상은 노란색이 아닌 것은 노란색으로, 노란색은 더 노랗게 보이는 증상이다. 끝내 알콜중독자가 돼버린 반 고흐는 ‘압생트’의 또 다른 부작용인 뇌세포를 파괴시키는 정신질환까지 얻음으로써 말년에는 스스로 자신의 귀까지 잘라버리는 데, 이렇게 탄생한 반 고흐의 자화상은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아래는 반 고흐의 영혼으로부터 탄생한 강렬한 노란색의 작품들이다.
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 테라스>, 1888년
빈센트 반 고흐 <붕대로 귀를 감은 자화상>, 1889년
어떻게 예술이 시대를 앞서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후기 인상주의 미술가 폴 세잔(1839~1906)을 보면 명징하다. 폴 세잔 이전까지의 그림 속에는 단 한 가지의 시점만이 존재하는 그림이었다면 아래 폴 세잔의 그림 속에는 2차원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시점이 존재한다. 어떤 사과들은 위에서 보는 시점으로, 어떤 사과들은 앞에서 보는 시점으로, 서로의 시점이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조화로운 느낌까지 담고 있다.
폴 세잔 <사과와 오렌지> 1899년경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한 가지의 시점이 아닌 다양한 시점으로 사물을 바라본다는 것은, 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윈주의의 모태의 신호탄이 된다는 점이다. 단 한 가지의 기준에 의한 옳고 그름의 이데올로기적 해석에서 벗어나 이제는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출발시켰다. 근대의 이데올로기는 후퇴하고 현대의 다윈주의가 미술계에 등장한 역사적인 그림인 것이다.
폴 세잔의 사상을 이어받아 시점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미술가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입체파의 선구자 피카소(1881~1973)다. 피카소는 그의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인체를 여러 가지 시점으로 분해함으로써 폴 세잔의 다시점을 극단적으로 분해하기 시작한다.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
폴 세잔의 다시점, 그리고 이를 극단화한 피카소, 그리고 시점을 무한대로 끌어올린 현대 미술의 창시자 마르셀 뒤샹(1887~1968)까지 이어진다. 뒤샹에 와서는 시점의 무한대가 펼쳐진다. 즉, 미술작품을 보는 모든 관객의 생각과 자율성이 곧 그 작품에 대한 해석이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저마다 가치를 내재하고 있는 다윈주의가 뒤샹의 작품에 담겨있다.
미술은 결코 어렵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는 만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아는 만큼 볼 수 있다는 것은 미술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아니다. 점, 선, 면, 조화로움, 구도, 색의 배합 등에 대한 이론적 학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오해는 미술을 삶으로부터 격리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미술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역사에 대한 고찰이다. 한 사람의 일생은, 5천 년 인류 역사를 압축해 놓은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중세 시대의 가치관을 고수하는 사람, 근대시대의 정신세계를 유지하는 사람, 현대 시대에서 방향성을 잃어버린 사람, 미래의 가치관을 탐구하는 사람 등 모두 저마다의 생각으로 현대 시대를 구성하며 살아간다.
서평도 아니고, 독후감도 아니고, 그렇다고 리뷰도 아닌 난잡한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약간의 힌트는 얻은 것 같다. 미술을 조금 이해하고 나니 나의 정신세계가 어느 시대쯤에 머물러 있는지 가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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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미술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든 적이 있습니다. 뭐 역시나 책을 읽고서죠. 그런데 미술은 공부하기 너무 어려운... 관심분야거나, 미대를 전공했거나, 직업이 미술쪽이거나가 아니면 쉽게 접근하기 힘들더군요. 아~~~ 넘 무식해. ㅠㅠ
이 말 기억할게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미술이란게 참 난해한것처럼 보이면서도 시대성을 잘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꽤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습니다. 저도 한번씩 미술공부에 대한 열정이 꿈틀한다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