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시간쯤 갑자기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한통 걸려왔습니다.
010-3021-1514
자신을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김석호 계장 이라고 소개하면서
농협에 근무하는 김기철(38)씨를 혹시 아느냐 고 물어보더라구요.
사실 이때 아 보이스피싱이구나 눈치 깠어야 하는데
막상 저에게 닥치니 정신이도 없고 뭔지도 모르고 통화를 이어가게 되더라구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농협에 근무하는 김기철(38)씨가 사기혐의로 구속되었고
체포 과정에서 여러 대포통장들이 발견 되었는데
내 명의로 발급된 우리, 하나 은행 통장이 발견되었고,
해당 통장을 통해 피해자들이 발생하였으므로
수사관인 김석호 계장이 먼저 연락을 한 것이다
huna씨의 개인정보를 도용당했겠지만 아직 무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으므로
피의자로 재판이 진행될 것이며
재판에 사용될 증거자료를 위해 해당 통화를 녹취할 것이니
조용한 곳으로 이동해서 전화를 받아라
녹취시 제 3자의 목소리가 혹은 잡음들이 들어가면 재판시 증거로 사용하지 못할 수 있다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도 대놓고 보이스피싱인데
막상 당하니 내 명의로 된 대포통장때문에 ㅈ됬구나 하는 생각뿐이 안들더라구요.
회사 회의실로 이동해서 녹취를 진행했습니다.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될 녹취본이니 본인 확인용 이름 및 생년월일을 말씀하시고
그 외에 일체의 개인정보 필요하지 않으니 개인정보 언급은 하지 말기 바라며
'예', '아니오'와 같이 간단하게 답변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불법 자금 추적을 위해 huna씨의 거래 은행의 통장들에 들어있는 현재 금액과 추후의 금액을 비교할 것인데
이를 위해 각 은행, 증권, 주식, 가상화폐 등의 보유 자금을 대략적으로 말해주셔야 합니다.
만약 현 시간 이후로 계좌를 역추적하여 금액이 크게 다를 경우
불법자금으로 간주하고 조사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설명을 듣고 녹취를 진행했습니다.
와 정말 다시 생각해도 이상했는데 눈치를 못챈 제가 바보죠 하하..
갑자기 쫄보가 되서는 사용하는 은행별 계좌와 해당 계좌에 얼마정도씩 있는지 전부 불었네요...
그렇게 녹취가 끝나고는 사건번호를 알려주더군요.
제 17 고합 02401
와 살면서 사건번호 처음 봤습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도 못했죠.
이제 담당 검사를 연결해 드릴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정말 잠시 기다렸는데 다른 사람이 등장하면서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팀 김석재 검사 라고 소개하더군요.
와 목소리 중후하니 정말 검사 같았습니다.
담당 수사관한테 설명 들었냐고 물어보면서
어떤 사건으로 인해 연락을 받았는지 하나하나씩 물어보고는
현재 무혐의가 인정되지 않았으므로 피의자 신분이다 라고 하면서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약식조사 와 법원으로 직접 올지 선택을 하라고 하더군요.
일하는 중이라 갈수도 없어서 약식조사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법원으로 간다고 했으면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해 지네요.
약식 절차로 진행할 것이니 관련 공문들을 이메일로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이런 메일을 보내주더군요.
메일에 포함된 pdf 파일들은 보안때문에 암호를 걸어놨고
암호는 spo
+ 사건번호 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SPO는 Seoul Police Office
라고 친절하게 이니셜도 설명해주고...
이땐 몰랐지만 지금 검색해보니 SPO의 풀 네임은 Supreme Prosecutor's Office
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허술한것들에게 내가 놀아나다니...!!!
그러면서 PDF 파일을 하나씩 열어서 읽어보라고 하네요.
검사라서 그런지 아주 여유가 넘쳐났습니다.
먼저 사건공문장.pdf
와 급수가 특급안건 이네요. 특급은 살인, 강간, 방화 뭐 이런 경우라고 하네요.
이건 묻지도 않았는데 막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해주는게
지금 생각해보니 잘못 적어넣어서 들킬까봐 부랴부랴 설명을 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리고 협조공문장.pdf
공무상 비밀 보안 유지를 위해 제 3자에게 말하면 안된다고 겁을 주네요. 벌금 2000만원 이라면서.
이때부터 슬슬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은행연합회.pdf
대박이지 않습니까 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치밀하다니...
얼핏 봐서는 정말 속을 수 밖에 없게끔 치밀하게 만들었습니다.
검사가 공문과 메일에 첨부된 보도자료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합니다.
역시나 검사라서 여유가 넘칩니다.
근데 보도자료에 보도날짜가 2018.05.25 로 되어 있는게 눈에 띕니다.
오늘은 2018.05.16 일인데??
그래서 물어봤더니
사건 마무리를 그 날짜까지 해야해서 날짜가 그렇다
이게 무슨 개소리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서 전화하면서 몰래 검색을 해봤습니다.
저 쫄보 아니지만 이땐 쫄보가 됬네요...
사람 심리가 한번 겁먹고 나니깐 이 전화 끊었다가 ㅈ되면 어쩌지 하고 겁이 나더라구요.
그래도 그냥 전화 끊어버리고는 바로 02-1301 로 전화했습니다.
어디냐구요? 네, 검찰청 입니다.
huna: 저 쫌전에 서울중앙지검에서 전화가 왔는데요?
상담원: 보이스피싱이네요
huna: 네?
상담원: 010으로 전화 왔나요?
huna: 네...
상담원: 검찰청에서는 절대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 안해요~
huna: 아... 네...
검찰청과 상담원과의 전화를 끊은 뒤, 곧바로 보이스피싱 번호로 전화가 옵니다.
이제 리벤지타임이 왔습니다. 후후후 요노무자식
목소리 중후한 검사인척 하는 사기꾼
새끼: huna씨?
huna: ...
목소리 중후한 검사인척 하는 사기꾼새끼: 전화가 갑자기 끊겼네요?
huna: ... (욕을 해볼까? 아냐 일단 점잖게 나가자)
huna: 제가 알아봤더니 김석재라는 분 없다던데요?
뚜- 뚜- 뚜-
바로 끊어버리더라구요. 하... 내가 놀아나다니...
아 시작부터 욕을 날리면서 받았어야 했나...
난 아직도 너무 어리구나... (정신이...)
점심시간 다 날리고
간이 콩알만해지고
쫄보같이 계좌 줄줄이 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와중에 비트코인 나중에 팔았다가 익절하면 불법 자금으로 오해 받을까봐
개인지갑에 있는 비트, 이더, 등등 개수를 다 말해줬습니다. 아 ㅉ팔려라...
물론 계좌번호, 비밀번호, 개인지갑주소, 등등 중요한 정보는 말하지 않았죠.
이거 물어봤다면 바로 보이스피싱으로 의심했을 테니깐요.
살면서 참 신기하고 부끄러운 경험을 했습니다.
정리
-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010으로 전화오면 의심
- 본 사건을 제 3자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면 의심
- 대포통장 언급 시점에 바로 의심
- huna는 쫄보
보이스 피싱
치밀하고 무섭네요
하긴 난다 긴다 하는 내친구도 당했어요
정말 분위기에 휩쓸려서 겁먹기 시작하니 정상적인 사고가 안되더라구요.
친구분도 아마 그러셨을거에요 ㅠ
그래도 다행이네여
아 이상한 사람들 너무 많아요
맞아요.. 정말 험악한 세상이에요 ㅋㅋ
정말 치밀하네요. 나쁜넘들. 그머리로 좋은데 쓰지.
메일 받고 열어보는데 정말 깜짝 놀랐네요 ㅎㅎ
이글은 다른 분들을 위해 홍보 해야 겠어요.
네, 많은 분들께서 사전에 미리 아셔서 같은 피해를 받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무지 치밀하네요
갈수록 더 치밀해지는거 같네요 ㅎㅎ
@홍보해
저 이메일 주소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이런 일 때문에라도 우리나라 공무원들 공적인 일에 네이버나 지메일 같은 개인 이메일 못 쓰게 해야 합니다. 근데 심지어는 명함에 네이버 이메일 박아 놓은 공무원들도 계시더군요.
업무용으로는 무조건 본인이 속한 기관의 도메인을 사용해야하는게 정석이죠.
동감합니다!
정말 정말 조심하셔야할것같아요..
전 귀가 얇디얇은 팔랑귀라 애초에 모르는 번호면 전화를 안받거나.. 이상한말 하면 끊어버려요.. 그게 제일 직빵이더라구요..
괜히 계속 잡고 있다보면 홀려버려서..
요즘엔 나날이 발전하는 보이스피싱입니다..조심 또 조심!!
맞아요.. 저도 보통 광고성 전화는 그냥 끊어버리는데
제 개인정보 도용이며, 대포통장이며 하니
저도 모르게 호기심 반 걱정 반에 끊지 못하고 여기까지 가버렸네요 ㅎㅎㅎ
친절하게 글로 써주셔서 조심할수 있게 해주셨네요. 감사..
넵! 사전 예방 차원에서 많은 분들이 아셨으면 좋겠네요 ㅎㅎ
나날이 발전하는 보이스 피싱 정말 무섭네요...
한국가면 모르는 전화는 절때 안받아야겠네요
괜히 쫄보되서 전화 못끊을듯 합니다.. 하하..
제가 그랬어요 ㅎㅎ 생전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겁부터 나더라구요 ㅎㅎ
아우.... 힘드셨겠다.
저도 한번 받은 적 있어요. 저는 딱 받는 순간 왠지 보이스피싱 같아서
"지금은 통화가 곤란합니다. 오후에 전화 주시겠어요?" 하고 끊었어요.
끊고 검색했죠. 역시나....
그런데 갸들은 왜 이름을 안바꿀까요? 제가 들은 이름과 엄청 비슷한데요. ㅎㅎㅎ
맞아요 ㅎㅎ 덕분에 저도 웹 검색으로 보이스피싱인걸 알았죠
같은 이름을 사용해서 천만 다행이였어요 ㅎㅎ
ㅋㅋ저도 작년에 이런 전화받고 놀라서 계속 듣고있다가 잔액을 물어보더라고요
한창 가상화폐 투자중이라 통장에 잔고가 많지않았는데 ㅋㅋㅋ 먹을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알아서 마무리하고 끊더라고요 ㅋㅋㅋ
저도 통장 잔고는 얼마 안되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 암호화폐 수량 얘기 하고 나니깐 바로 검사 연결해준 것 같네요...
무섭네요..
보이스 피싱 무섭죠
맞아요. 직접 당해보니 사람들이 왜 당하나 이해가 되더라구요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