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기 전 삼성전자 사장이 최근 한 인터뷰에서 한 말

BOE 회장 출신 왕둥성 에스윈 회장과 10년 이상 인연으로 수락

"삼성과 경쟁안하다는 조건 내걸었다… 반도체 떠난지 30년됐다"

"한달에 1~2주 정도 경영 전략 자문… 삼성의 고객될 수 있는곳"

삼성전자 사장 출신이 중국 시스템반도체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에 ‘기술

유출론’이 또 다시 부각됐다. 198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LCD사업부(삼성디스플

레이 전신) 사장과 중국삼성 대표를 지내고 2017년 퇴임한 장원기 전 사장은 지

난 2월 28일 설립된 에스윈(ESWIN)과기그룹의 부회장으로 영입됐다.

에스윈과기그룹은 2016년 설립된 에스윈과기 및 관계사들을 총괄하는 그룹이

다. 왕둥성(王東升)이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 BOE 회장에서 물러나고 작년

6월 에스윈과기에 합류한데 이어 그룹체제를 갖추면서 그룹의 회장 겸 최고경

영자(CEO)를 맡고 있다.

에스윈과기는 중국이 한국을 추격하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에 들어가는

구동칩을 개발하는 곳이다. 왕둥성은 삼성과 LG를 밀어내고 BOE를 세계 최대

LCD패널업체로 키워 ‘중국 LCD산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여기에 삼성

전자가 2030년까지 세계 1위를 하겠다고 선언한 비메모리의 핵심 중 하나가 에

스윈 주력사업인 시스템반도체라는 점 등이 얼키면서 국내에선 장 전 사장의 행

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미⋅중 갈등 고조로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

가 강화되면서 중국이 공격적으로 반도체 굴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도 이런 우려

를 증폭시켰다.

장원기 전 사장과 12일 전화로 연락이 닿았다. "기술 유출이라니요. 저는 뼛속까

지 삼성인입니다. 삼성과 경쟁하는 일을 안하는 조건으로 수락한 겁니다. 왕둥

성과 10년 이상 형 동생 하는 관계로 한달에 1~2주 정도 경영자문해주는 소일거

리를 하는 겁니다."

장 전 사장은 "(이렇게 오해를 살지)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다"면서도 훗날 삼

성의 협력사나 고객이 될 수 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상임도 아닌데다 신종 코

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국 가기도 여의치 않아 한국에 있다

고 했다.

다음은 장 전 사장과의 일문 일답

-왜 중국 기업을 가게됐습니까.

"출발은 인간관계입니다. 2009년 우리 LCD가 중국에 진출(공장 설립)할때 이를

반대하던 왕둥성과 인연을 맺기 시작해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이후 중국삼

성 대표로 일하면서 드라이브칩 같은 삼성 부품을 BOE에 많이 팔면서 교류가 많

아졌지요. 왕둥성은 나이 몇살 많은 저를 다거(大哥⋅형님)라고 하면서 나중에 퇴

직하면 함께 지내자고 늘 얘기를 했고, 저도 퇴임한지 2년이 돼 고문에서도 물러

나 소일거리라도 할 수 있겠다 싶어 받아들였습니다. "

-삼성전자의 경쟁자가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제가 일을 하기로 하면서 내건 조건이 있습니다. 삼성과 경쟁하는 건 안한다.

(삼성)후배들에게 폐 끼치는 건 안한다. 합법적인 거 이외엔 안한다. 한달에 1~2

주만 일한다(삼성에서 넘 일을 많이 해 지쳐서 여기서는 놀면서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모두 문제없다고 했고, 그래서 수락했습니다. 글로벌 경영과 전략 정도

자문하는 겁니다. 계열사가 시스템반도체를 하지만 삼성에 비하면 로엔드 수준

이고, 이 회사가 성장하면 삼성에 파운드리(위탁생산)를 맡길 수도 있고, 삼성에

필요한 부품을 공급할 수도 있기 때문에 되레 삼성의 고객이자 벤더(협력업체)

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을 볼때 경쟁과 협력, 리스크와 기회의 균형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도 삼성에서 40여년 일했는데 자문하다가 반도체 기술이 유출되지 않을까

요.

"제가 반도체에서 일한 건 대학 졸업하고 입사한 1981년부터 1990년까지입니

다. 1메가 D램 에칭 담당과장을 했는데, 벌써 30년이 흘렀습니다.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소용없습니다. "

-LCD에서 오래 일하셨는데, LCD와 반도체 공정이 비슷하다고 하는데요.

"LCD 공정이 반도체 공정과 비슷한 면은 있습니다. 하지만 질적인 수준이 크게

다릅니다. 트랜지스터가 3~5 마이크로 수준입니다. LCD가 반도체 기술과 다르

지 않다면 중국이 이미 LCD에서 세계 최대가 됐는데, 어떻게 반도체에서 이렇게

따라오지 못하겠습니까. 그리고 LCD도 저는 2004년(소니와 삼성전자 합작사 대

표로 취임)부터 경영자의 길을 가기 시작해 현장 기술을 떠난 지 16년이 됐어

요."

-후배 임직원을 중국 기업으로 데려갈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다시 얘기드리지만 기술은 1~2년 지나면 과거 기술이 됩니다. 경쟁사로 곧장

갈 수 없고, 1~2년 쉬었다가 가야하는데, 그렇게 경쟁사로 가더라도 2~3년 지나

면 (쓸모가 없게돼)팽 당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직책이 이사회 부회장입니다. 단순 자문을 한다면 고문이나 그런 직책을 받는

게 낫지 않았나요.

"왕둥성의 개인적인 배려였던 것 같습니다. 삼성전자의 사장까지 지낸 사람을

고문으로 앉히는 건 결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돈을 투자한 것도, 상임

으로 일하는 것도 아니지만 직책만 그렇게 붙여준 겁니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 기업행을 결정한

게 신중치 못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예. 동의합니다. 좀 더 큰 틀에서 봤어야하는데, 정말 두 사람의 인간관계로만

봤습니다. 그리고 퇴임하고 쉬다보니까 퇴화하는 느낌이 생겨 뭐라도 소일거리

를 할 수 있는게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

-중국 기업에서 계속 일을 하실 겁니까.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뭐라도 해보려니 삼성에 걸리고, 후배들에게

폐끼치는 일을 하게 되고 대부분 그렇더라구요. 되레 중국에서 일하다 쌓인 인

간관계를 자산으로 우리 중소기업이 중국에 진출할 때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봅니다. "

장 전 사장은 자신이 정식으로 취업한 첫 직장이 삼성이고, 마지막도 삼성이라

며 뼛속까지 삼성인이라는 말을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