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손님을 살해한 뒤 시체를 토막내 한강에 버린 장대호의 옥중서신의 텍스트본.
작년 12월에 썼다는데 진짜일까? 주작일까?
사진만으로 떠돌기에 텍스트본 저장 겸 공유
<언론이 말해주지 않는 사실들>
죽은 원고는 다수의 폭력전과가 있다.
또한 불법안마시술소 운영혐의로 형사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
반면 장대호는 사십평생 살아오면서, 폭력전과가 단 한 건도 없으며, 벌금 50만원이 전부이다.
그러나 양아치 폭력배의 주먹질을 참아줄만큼 착하거나 아량이 넓은 사람은 아니었다.
죽은 원고는 재수없게도 그 마지막에 장대호를 만나 지 성질대로 행패를 부리다 최후를 맞이했다.
<후회 1>
나만 가두리 쳐놓고, 모텔 종업원이 손님을 토막살인 했다고만 떠들면서 사형으로 여론몰이를 할 줄 알았다면, 자수하지 말 걸 그랬다.
내게는 자수 전까지 4일이라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고, 그 사이 증거인멸을 했다면 상황은 어땠을까.
그 후 도망치거나 체포되더라도 자백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했다면 증거, 증인, 진술의 삼요소가 구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초범인 나는 순진하게도, 마치 내가 수사관인냥 증거와 진술을 모두 제공하였고, 그 보답으로 신상공개와 사형구형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여러분들은 반드시 나의 경우를 기억하여 나와 같은 멍청한 짓은 하면 안된다.
<후회 2>
죽은 원고는 약한 강도로 내 배를 4회 정도 가격했을 뿐이고, 담배연기를 한차례 내 얼굴에 대고 내뿜었을 뿐인데, 나는 그의 목숨을 빼앗아 버렸다.
보복을 하더라도 이성적으로 계산하면서 했어야 했다.
죽이진 말고 침착하게 두 눈을 공격하여 맹인으로 만들거나 아킬레스건을 절단하여 앉은뱅이로 만들 걸 그랬다.
그런데 감정이 앞서 모든 것을 망쳤다.
여러분들은 반드시 나의 경우를 기억하여, 살인은 절대로 해선 안된다.
<후기>
나는 2019년 12월 중 이 회고록을 외부로 유출시키려다가 서울구치소에 적발되어 금치 22일이라는 징벌처분을 받고 회고록은 압수당했다.
그 후 다시 회고록을 작성중이며, 훗날 여러분들이 28페이지 분량의 내 회고록 전문을 보게 된다면, 그것은 내가 서울구치소에 있을 때, 여러 경로를 통해 외부로 유출한 것이다.
유출시기는 2019.12~2020.1월 사이다.
-보내는 사람-
군포우체국 사서함 20호 3507 장대호
*2019 한강몸통시신사건 장대호 회고록
나는 2005년부터 숙박업에 종사하였다.
그러다 2017년 8월, 서울 구로구 대림동 짜장모텔에 입사하여 지배인으로 종사하게 되었다.
10년 이상의 숙박업 경력으로 인하여, 모텔의 전반적인 업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었고, 그때문에 짜장모텔 업주는 나를 신뢰하여, 모텔 내의 업무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일이 적었으며 그는 오전에 잠깐 들러서 수금만 해가는 정도였다.
2019년 8월 8일 오전 6시경, 나는 여느때처럼 혼자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그때 주차장을 가로질러 한 남성이 들어왔고, 나는 “어서오세요.” 인사하며 맞이했다.
그러자 “야 얼마야?” 하며 대뜸 내게 반말을 하였고, 이에 내가 “뭐라고?” 받아치자, 그놈은 “얼마에요?” 하며, 존댓말로 태도를 바꾸었다.
기껏해야 내 또래 이하로 보이는 녀석이, 처음 본 내게 건넨 첫마디가 ‘야 얼마야’ 반말이었다.
후에 알았지만 이놈은 나보다 여섯살 어린 1986년생이었고, 중국인(조선족) 이었으나 한국으로 귀화하여 보도방 관련 일을 하는 포주였다.
아무튼 나는 다시 태도를 바꾼 녀석에게 “사만원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놈이 또다시 반말로 “삼만원에 하지.”라고 내게 말하였고,
“사만원입니다.”
“삼만원에 하라고.”
“사만원입니다.’
“삼만원~”
“사만원입니다.”
“삼만원!”
“......”
이와 같은 말이 오고 갔으며, 나는 시종일관 반말로 요금할인을 강요하는 놈의 태도가 불량스럽게 느껴져, 손님으로 받지 않고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저기 지금 우리가 방이 없는데, 다른데로 가시겠어요?”
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현관쪽으로 걸어나갔다.
나는 손짓으로 밖을 가리키며,
“바로 옆에 다른 모텔 많거든요? 이쪽으로 나와보세요~” 라고 놈에게 안내하였다.
그러자 놈이 나를 노려보다가 내 말을 따라 밖으로 나오는가 싶더니, 나와 몸이 근접한 찰라, 갑자기 내 배를 주먹으로 가격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몹시 당황하고 흥분하여, “아 이사람 왜이래!” 이러면서 그를 밀쳐냈다.
그러자 놈이 주먹을 들어보이며, 내 얼굴을 때릴 것처럼 위협했다.
진짜로 때리진 않고, 잠시 그상태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를 겁주려는 행동으로 보였다.
혹시 맞더라도 CCTV가 촬영되고있는 주차장에서 맞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놈의 주먹 쥔 왼손목을 붙잡고 주차장쪽으로 유도했다.
그러면서 “시비걸지 말고 딴데로 가쇼~ 다른 모텔 많으니까.” 라고 놈에게 말하였다.
그런데 막상 주차장 한복판으로 나오자, 놈은 나를 때리려는 동작을 멈추고 중국담배를 한대 꺼내 물더니, 담배연기를 내 얼굴에 내뿜으며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돼? 여기 사장 누구야?”
이러면서 나를 괴롭힐 뿐이었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이se끼 죽여버릴까’라는 살의를 품게 되었다.
“시비 그만 걸고 딴데로 가요, 저기 바로 옆 짬뽕모텔 보이죠? 저기도 똑같으니까 저쪽으로 가쇼~”
나는 계속 놈에게 다른 모텔을 이용할 것을 권하였으나, 그는
“너네 사장이 그리 대단한 사람이야?” 이러면서 가지않고 계속 내게 시비를 걸어왔다.
“시비 걸지 말고 옆으로 가라니까!” 이러면서 나는 놈의 어깨를 가볍게 밀치며, 카운터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그러자 놈은 내게 자신의 몸을 갖다붙이며 계속 들이댔다.
“나 여기서 잘꺼니까 너네 사장 와보라그래.”
이때 죽으려고 환장한 놈처럼 느껴졌다.
보통 이런경우 대충 진상부리다 다른 곳으로 가기 마련인데, 이놈은 끝장을 보자는 식으로 내게 계속 들이댔다.
나 혼자 모텔을 지키고 있는 그러한 상황에서, 카운터까지 다시 따라들어와 나를 괴롭히는 이놈과 장시간 소란을 피울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결국 놈에게 굴복하고 방을 내어주고 말았다.
301호 키를 건네주면서 “301호” 짧게 말했다.
나도 더이상 놈에게 존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자 놈이 “니가 안내해줘야지.” 이렇게 말했다.
이순간 나는 ‘이se끼 죽여버려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함께 E/V(엘리베이터를)를 타고 3F으로 가서, 301호 문을 열어주고 놈을 방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나는 놈에게 “사만원 내놔.” 라고 말했다.
그러자 놈이 “내일 아침에 얘기하자고.” 이러면서 문을 닫았고, 나는 더이상 맞서기 싫어(질까봐) 1F 카운터로 내려왔다.
카운터에 앉아 생각해보니, 놈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내가 너무 싫었고, 그놈이 내게 한 행동들을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에 즉시 카운터 옆 공구함 아래에 있던 여러 망치들 중에, 가장 무거운 쇠망치를 선택해 들고, 당장 301호로 달려가 놈을 박살내고 싶었다.
그런데 그순간 갑자기 배가 아팠고, 두통까지 발생하여 나는 잠시 카운터 뒤편에 있던 나의 숙소로 가서 누워 쉬었다.
잠시 후 몸이 괜찮아지자 나는, 다시 카운터로 돌아와 앉았는데 301호 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가 ‘딸칵’ 하고 들렸다.
아침의 고요한 정적이, 3F에서 문 잠그는 소리까지 1F 카운터로 전달해 주었던 것이다.
“se끼~겁은 많아서 문잠그고 자려나보네~”나는 이렇게 혼잣말을 하며, 놈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그와중에도 나는 갈등하였다.
‘그냥 다음 근무자에게 이 상황을 인수인계하고, 저놈 나갈때 붙잡고 숙박비 4만원 받으라고 할까?’
하지만 입사한지 한달도 안 된 다른 직원에게, 저 301호에서 처자고 있는 양아치를 상대하게끔 하기에는, 내 스스로가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그놈이 내게 저지른 폭력을 곱씹으며 떠올리자, 엄청난 분노감이 밀려왔고, 나는 비상키와 망치를 들고 3F으로 올라갔다.
301호 문을 조심스럽게 열면서, 잠들었으면 죽이고, 혹시 안자고 있으면 그냥 내려오기로 마음먹고는 방안을 살폈다.
방안을 보니, 놈은 나체상태로 엎드려 자고 있었다.
나는 방안으로 살금살금 들어가,
‘내일 아침에 얘기하자고? 내일이 어딨어 이se끼야! 너는 이제 내일이 없어! 죽어 이se끼야!’ 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쇠망치로 놈의 뒤통수를 1회 힘껏 내리쳤다.
그순간 놈의 오른쪽 뒤통수에 피멍울이 맺히는게 보였다.
그러나 놈은 무반응이었다.
이에 더욱 흥분하여 두손으로 쇠망치를 부여잡고, 도끼질하듯 힘껏 서너차례 놈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한대 한대 내려칠때마다 장단 맞추듯 놈도 신음소리를 우~! 우~! 우~! 하고 내었으며, 피는 분수처럼 솟아올라 천장과 벽면 사방에 튀었다.
놈의 뒤통수 뼈는 과자처럼 으스러져, 마치 뇌가 보이는 것만 같았고, 뇌수 또한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나는 피가 너무 많이 튀자, 그 피튀김에 놀라서 그만 공격을 멈추고 멍하게 잠시 서 있었다.
공격을 멈춘 후에도 그 놈은 신음소리를 길게 내면서 숨이 붙어있었다.
이에 혹시 놈이 정신차려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까 하여, 놈의 휴대폰은 망치로 깨부수고, 객실 키폰과 함께 들고 1F 카운터로 황급히 내려왔다.
카운터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수시로 1F 카운터로 내려와 주변을 살필 수 밖에 없었다.
놈의 휴대폰은 도림천 아무곳에나 던져버리기로 계획하고, 내 전기자전거 뒤편 짐가방에 넣어두고는, 301호 키폰은 내 숙소에 보관하였다.
이후 맞교대 근무자였던 남재윤과 근무교대를 하고 301호로 올라갔었는지, 아니면 곧바로 301호로 올라갔었는지, 지금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사건당일은 2019년 8월 8일 오전 6시~9시 사이고, 이 글은 2019년 12월 4일 수요일 오후에 작성중이다.
아무튼 나는 다시 301호로 진입하여 놈의 소지품을 살폈다.
지갑을 보니 놈의 신분증과 각종 중국어로 쓰여진 명함들이 있었고, 중국지폐 석장과 한국화폐 16만원도 발견됐다.
나는 지갑에서 돈을 발견한 순간 다시금 화가 났다.
“니가 돈 냈으면 내가 너 안죽일 수 있ㅇㅆ잖아~돈 있었으면서 왜!...”
이렇게 원망하듯 침대에 엎어져 있는 놈을 향해 말하였다.
그러나 후회해도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놈의 가방안에는 수첩이 있었는데, 펴보니 창녀들 순번과 수금현황이 적힌 장부같았다.
‘아가씨 장사하는 놈이었군.’ 나는 이렇게 판단했고, 놈의 신발, 옷가지, 가방 등은 헌옷수거함에 갖다버렸다.
그리고 나는 이 양아치를 조선족으로 짐작하고 있었는데, 신분증을 보니 주민번호 뒷자리가 1로 시작하고 있었다.
‘왜 민증 뒷자리가 1로 시작하는거지? 한국사람인가? 그럴리 없는데 혹시 위조된 신분증인가?’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나는, 한동안 이놈의 신분증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때문에 이놈의 인적사항을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되었다.
(이포준 860926-1XXXXXX)
나는 놈의 신분증, 수첩, 명합 등을 찢어서 버리고, 담배는 따로 챙겨놓았다.
교대근무자였던 남재윤이 흡연자였기에, 그에게 줄 생각이었다.
후에 이 중국담배는 증거물로 압수되었다.
참고로 나는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는 격일제 근무로, 이 곳 짜장모텔에서 근 3년 간 먹고 자고 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2019년 8월 8일 오전 11시부터는, 내가 쉬는 날이 되고 교대근무자 남재윤의 근무가 시작된다.
근무교대 후 나는 남재윤에게 “잠시 나갔다 올게.”라고 말 한 뒤, 나의 전기자전거를 타고 대림역 근처로 가서 놈의 휴대폰을 도림천에 던져버리고 돌아왔다.
그런 후 옥상에 운동하러 간다는 핑계로 E/V(엘리베이터)를 타고 6F으로 가서, 계단을 이용해 301호로 몰래 들어갔다.
침대에 엎어져 있는 놈을 욕실 바닥으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방을 계속 피로 오염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놈의 사체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내게 행패부리다 쇠망치로 머리통을 처맞고 뒤진 이놈은, 키 175cm 전후에, 몸무게 90kg 정도 되는 체격이었던 것 같다.
참고로 나 장대호는 키 162cm에 80kg(2019년 기준)이다.
나는 놈의 양팔을 붙잡고 끌다시피 힘을 쓴 끝에, 겨우 놈을 욕실바닥으로 이동시키는데 성공했다.
짜장모텔은 각층마다 녹화되는 CCTV가 없었기에, 내가 3F에서 뭘하든지, 다른 사람들은 확인할 수 없었다.
이런 허술하고 낡은 여관 환경이, 나의 범행을 더욱 용이하게 하였다.
나는 또한, 나의 돈과 죽은 양아치놈의 돈을 더해, 301호 숙박비를 선결재 한것처럼 장부를 기재하여, 교대근무자 남재윤으로 하여금 301호를 신경쓰지 않도록 했다.
8월 8일 저녁에는 불안한 마음에 밖으로 나가 잠을 잤다.
신림역 근처 어느 모텔에서 방을 잡고 잤던 것으로 기억되며, 그와중에 점집에 들어 두번이나 점을 보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나의 근무를 서기 위해 짜장모텔로 다시 돌아왔다.
2019년 8월 9일 오전 11시, 남재윤을 퇴극시키고 24시간 동안의 내 근무가 시작되었다.
이제 내 근무날이므로 나는 남재윤의 눈치를 볼 필요없이, 비교적 자유롭게 301호에 드나들 수 있었다.
평일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나는 틈 날때마다 301호에 들어가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내가 죽인 거지만, 사체를 마주보는 일은 무섭고 서늘한 것이었다.
301호 에어컨을 계속 켜두었기에, 드나들때마다 오싹한 기운이 감돌았다.
차를 빌려 놈을 싣고 어디 야산에 암매장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놈이 너무 무거워 나 혼자 사체를 유기하기엔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다.
어찌할 바를 고민하며, 잠시 자수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이 상황은 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확신에, 사체만 잘 처리하면 완전범죄를 완성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에 사체를 토막내 유기하기로 결심했다.
1F 카운터로 내려와 근무를 하면서, 사체처리를 어찌할지 구상했다.
1년 전에 짜장모텔 지하실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며, 어떤 상자에 과도와 식칼, 여러 조리도구 등이 들어있던 걸 기억하여, 지하실로 내려가 톱칼 한자루와 부엌칼 한자루를 챙겨 301호에 가져다 놓았다.
그와중에 걸레 등도 함께 챙겨들어가, 방바닥 혈은을 닦아내며 방안을 정리하기도 했다.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방 벽지에 튄 혈흔을 은폐하기 위한 스티커를 주문했고, 방독면, 방향제, 큰 베낭도 주문하였다.
2019년 8월 10일 오전 11시, 다시 남재윤과 근무교대를 하고 나는 신림동에 있는 나의 원룸으로 가서, 기타가방과 절단기를 챙겨 짜장모텔로 돌아왔다.
그런 다음 남재윤에게 “옥상가서 운동하고 올게.”라고 말한 뒤, 6F으로 올라가 계단을 통해 다시 301호로 들어갔다.
그리고 부엌칼로 놈의 오른편 목을 썰어보려 시도했다.
그러나 사람가죽은 생각보다 두꺼웠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그만 포기하고 1F 숙소로 돌아와 잠을 잤다.
저녁 무렵 일어나 카운터로 나가보니, 온라인으로 주문했던 가방, 방독면, 방향제, 스티커 등이 도착해 있었다.
8월 10일 토요일은 주말이라 평소보다 조금 손님이 많았기에, 남재윤은 나를 그닥 신경쓰지 않고, 제 할일을 했었던 것 같다.
8월 10일 저녁 10시경, 기타가방 안에 작은가방과 방독면, 방향제, 절단기, 고무장갑을 넣고 멘 후, 남재윤의 눈치를 살피며 옥상에 운동하러 가는 척 6F으로 올라가 또 다시 계단을 이용하여 301호로 들어갔다.
그렇게 301호에서 다시 놈의 사체와 마주쳤고, 사체훼손시 역한 냄새가 날까하여 방독면을 착용한 뒤, 욕실 안 여기저기에 방향제도 배치해놓았다.
나는 놈이 내게 저지른 잘못들을 다시 떠올리며, 분노게이지를 상승시켰다.
그 분노감을 이용하여 목숨을 건 각오로, 놈의 오른쪽 다리부터 절단작업을 시작했다.
먼저번에 부엌칼이 잘 들지 않았던 점을 감안해, 이번에는 톱처럼 날에 이가 서있는 톱칼을 이용하여 사체를 썰기 시작했다.
그러자 너무도 쉽게 오른쪽 사타구니살이 썰려나갔다.
그러나 뼈는 아무리 톱질을 해도 절단되지 않았다.
이에 절단기를 이용해 관절부위를 어느정도 도려내고 다리를 비틀자, 드디어 분리되었다.
사체를 마주보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지만, 한 번 훼손하고 나니 그냥 고깃덩어리로 보일 뿐이었다.
대담해진 나는 같은 방법으로 놈의 왼쪽다리, 오른팔, 왼팔, 마지막으로 놈의 목을 잘라 순차적으로 욕조 안에 넣었다.
이로써 놈의 사지와 머리를 잘라 몸통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고, 토막난 사체들을 검정색 쓰레기봉투에 담아 묶어가지고는, 방안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사체에 에어컨 바람을 직접 쐬게 하여, 사체부페를 지연시킬 목적이었다.
토막시신중 부피가 작고 가벼운 머리통을 작은 가방에 넣고 1F으로 내려왔다.
이에 남재윤이 의아해하며 “지배인님 어디갔다오신겁니까?”라고 내게 물었다.
“옥상에서 운동하다 깜빡 잠들었지 뭐야 ㅎㅎㅎ”이렇게 둘러대고 나는 “한강에 놀러갔다올게.”라고 말한 후, 내 전기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새벽 2시 전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도림천 자전거길을 이용해 안양천을 거쳐, 한강 남단 가양대교 조금 못가서 나는 자전거를 멈추고 주변을 살핀 다음, 가방에서 놈의 머리통을 꺼내 한강으로 힘껏 내던지고 짜장모텔로 돌아왔다.
그런 후 101호 나의 숙소에서 잠을 청했다.
2019년 8월 11일 일요일 오전 11시, 나는 근무를 서기 위해 카운터로 나가 남재윤을 퇴근시켰다.
그리고 오늘 안으로 나머지 사체들을 처리해, 301호를 깨끗히 정리하기로 하였다.
그럴려면 오늘 밤 나를 대신해 얼마간 카운터를 봐 줄 사람이 필요했다.
퇴근한 남재윤을 다시 부르기엔, 행여 의심을 살까하여 어렵게 생각되었다.
이에 한달전쯤 가게를 그만둔 박석민이란 친구에게 연락하여, 오늘 밤 11시부터 아침 6시 까지, 7시간 동안 카운터 알바를 제안했다.
밤 11시 박석민이 도착했고, 나는 그에게
“형 물건들이 301호에 몇 개 있는데, 그거 오늘 원룸으로 빨리 옮겨야 되서 너 불렀어.” 라고 둘러대고는, 박석민과 교대하였다.
그런 후 나는 큰 베낭을 메고 301호로 가서 몸통시신을 베낭에 넣고 내려와 헬멧을 쓴 후, 전기자전거를 타고 먼저번에 놈의 머리를 내던졌던 장소로 다시 가서, 몸통시신을 겨우 한강에다 유기했다.
참고로 몸통이 가잡 무겁다.
몸통이 약 40kg 정도로 느껴졌고, 그 다음은 다리 하나가 무겁다.
그 다음은 머리통이 약 9kg 정도로 느껴졌고, 한쪽 팔이 가장 가벼웠다.
그래서 나는 가장 무거웠던 몸통시신이, 한강물속으로 가라앉을 줄 알았다.
그러나 한강에 밀어넣은 순간, 풍덩~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거의 곧바로 몸통시신은 떠올랐다.
아뿔사!
그러나 현장에 오래 머무를 여유는 내게 없었다.
무시하고 얼른 짜장모텔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기타가방에 다리 한짝을 넣고, 같은 방법, 같은 장소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나머지 다리 한짝을 동일한 방법으로 처리하고 카운터 뒤편 숙소로 들어가 잠시 쉬었다.
이제 팔만 처리하면 되었다.
팔은 가장 가벼웠기에, 양 팔을 모두 한봉지에 담아서는, 역시 같은 방법, 같은 장소에 유기하였다.
이로써 놈의 사체를 모두 한강에 갖다버리는데 성공하였다.
돌아와 301호를 청소, 정리하고는, 박석민을 퇴근시키고 내가 카운터에 앉아 5시간 가량 업무를 보다가, 2019년 8월 12일 오전 11시, 남재윤과 근무교대를 한 후 카운터 뒤편 나의 숙소로 들어가 잠을 잔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 인터넷에 접속했더니,
‘마곡철교 남단에서 몸통시신 발견’ 이라는 뉴스가,
모든 포털사이트 메인화면에서 화자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범인인 이른 바 한강몸통시신 사건을 키워드로 검색하며, 뉴스들을 주시하였다.
8월 13일 오전 11시, 출근하여 남재윤과 근무교대를 한 후 카운터에 앉아 TV와 인터넷을 통해 계속 상황을 지켜봤다.
-범인은 조선족 아니면 전라도다.
-범인 잡으면 고유정과 한방에 쳐넣어라.
-흉악범이 착한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죽였다.
-범인은 두 명 이상의 중국 조폭들일 것이다.
-칼을 잘 쓰는 전문가의 소행이다.
-몸통을 가라앉히려는 노력을 했는데 떠오른 것이다.
-남한강에서부터 떠내려왔을 것이다.
위와 같은 온갖 추측성 뉴스와 댓글들이 눈에 띠었다.
나는 그런 글들을 읽으며 생각했다.
몸통시신이 발견된 순간 완전범죄는 실패했기에, 잡히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잡히기 전에 자수하여 내 스스로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게, 나에게 조금이나마 유리하지 않을까?
이와 같은 생각들로 정리되었고, 무엇보다 죽은 놈은 양아치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종일 생각과 고심을 한 끝에 자수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자수할 수는 없었다.
일단 오늘은 나의 근무날이었고, 내가 지금 말도없이 갑자기 사라지면, 짜장모텔이 문제였다.
남재윤은 입사한지 한달도 안되었고, 숙박업 경력이 1년 정도 뿐이었기에, 모텔의 여러가지 업무를 처리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남재윤에게, 내가 없어도 짜장모텔을 원활하게 관리하고, 그가 일하는데 막힘이 없도록 인수인계할 시간이 필요했다.
2019년 8월 14일 오전 11시, 남재윤이 출근하였다.
“한강에서 몸통시신이 발견됐대~뉴스 봤냐?”
“그래요? 제가 뉴스를 잘 안봐서요~”
이와 같은 대화를 나눈 후, 나는 퇴근하여 내 방(101호 숙소)으로 가 잠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 오후쯤 깨어나 신림동에 있는 나의 원룸으로 가서, 짜장모텔 일일매출 장부를 200장 정도 프린팅해서 준비하였는데 이는 내가 사라지고 난 후, 얼마동안 쓰여질 여분의 장부가 부족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짜장모텔 지배인으로써 요금표, 장부, 안내표 같은 것을 직접 만들어 관리했기에, 신림동 원룸은 일종의 내 개인사무실이었고, 프린터와 코팅기까지 있던 내 전용공간이었다.
그곳엔 한두달에 한번정도 들어가 개인정비한 하고 나왔던 일종의 창고였다.
그런데 수사과정에서 이곳이 털려 PC 하드디스크에 있던 각종 야구동영상과 야사들, 시체사진 등과 같은 고어짤들이 발견되어, 나의 원심 재판에 안좋은 쪽으로 영향을 끼쳤다.
한강몸통시신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내 사생활이 본의 아니게 드러나, 내게 불라하게 작용한 것이다.
이 글을 통해 변명을 하자면, 그러한 것들은 십수년에 걸쳐 골동품 모으듯 수집, 보관만 하고 있던 것들이었다.
쉽게 구할 수 없는 그러한 자료들을 희귀한 것으로 생각해, 비밀폴더에 잠금장치까지 해가며 그냥 보관만 하고 있던 것들이었고, 절대 어디에 유포시키거나 인터넷에 업로드한 사실이 없다.
그런데 하필 본 사건을 계기로 이런 것들이 들통나, 나의 폭력적인 성향을 뒷받침하는 재판자료로 쓰여진 것이다.
이제와 후회한들,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신림동에서 얼마간 머물며 볼 일을 본 후, 저녁무렵 짜장모텔로 돌아와, 남재윤에게 모텔 관련한 여러가지 업무를 알려주었다.
나는 남재윤을 모텔 내 여기저기로 데리고 다니며, 시설점검, 보수방법 등에 대해 일러주고는 일할 사람이 갑자기 필요할 때 구인하는 방법, 돌발상황 발생시에 대처하는 방법 등을 일러주었다.
2019년 8월 15일 오전 11시, 내가 출근하였고 남재윤은 퇴근하였다.
출근하자마자 카운터쪽 CCTV를 한차례 더 포멧했다.
내가 이놈을 처죽인 그시점에 CCTV를 포멧했었고, 이후 자수하기 전 체포될까 염려해 한 번 더 포멧한 것이다.
2019년 8월 16일 오전 11시, 남재윤이 출근하였고 나는 퇴근하여 101호 숙소에서 쉬고있었다.
이쯔음 놈의 머리통이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한것 같다.
한숨 자고 있던 늦은 오후, 누군가 노크를 했다.
고양경찰서 형사 두명이 찾아온 것이다.
그들은 내게 죽은 포주놈의 사진을 보여주며, 놈의 행방을 물었다.
나는 자수를 계획했기에, 여기서 체포될 수는 없었다.
모른다고 잡아떼고는 그들을 돌려보냈다.
잠시 후 화성경찰서 형사들도 찾아왔다.
그들 역시 놈의 사진을 보여주며 행방을 물었고, 역시 모른다고 하자 그들도 돌아갔다.
이때쯤 뉴스에서 놈의 오른팔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렸던 것 같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고양경찰서가 사건담당관할로 찾아왔던 것이고, 화성경찰서는 놈의 유족들이 실종신고를 하여, 실종자 찾기로 온 것이었다.
그리고 놈의 신원도 DNA 대조작업을 통해 알아낸 것이라 들었다.
정확한 것은 내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DNA 대조작업으로 놈의 신원을 파악했을 것 같다.
사체훼손당시 내가 놈의 엄지손가락 지문부위를, 칼로 도려냈었기 때문이다.
니제 나는 시간이 없었다.
어서 자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나 지금 일 그만두는거니까, 내일 나 기다리지 말고 새사람 구해써.”
“형님 어디 가십니까?”
“곧 알게 될꺼야~이제부터 네가 지배인이야.”
이와 같이 남재윤과 대화를 나눈 후 나는, 짜장모텔을 떠나 신도림역 방향으로 걸어가다 택시를 잡아 탔다.
당시 시간이 아마도 2019년 8월 16일 밤 10시 전후로 기억된다.
한참 후 서울경찰청 앞에 도착한 나는, 초병에게 자수하러 왔다고 말한 후에, 서울경찰청 안내실로 들어갔다.
“내가 자수하러 왔거든요? 강력계로 절 안내해주세요.”
“여기서 그런 건 처리해드릴 수 없고, 경찰서로 가보시겠어요?”
“가까운 경찰서가 어딘데요?”
“종로 경찰서로 가보세요.”
이렇게 서울경찰청 안내실 직원에게 퇴짜를 맞은 나는, 다시 택시를 타고 종로경찰서로 향했다.
종로 경찰서 안내실에 도착한 나는, 자수의사를 밝히자 곧 강력계로 안내되었다.
나는 강력계 형사에게 내가 한강몸통시신사건 범인이니, 어서 나를 구속시켜 달라고 했다.
그러나 형사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이에 죽은 포주놈의 인적사항(이포준 860928)을 말하자, 종로경찰서 강력계 형사는 그제야 나를 긴급체포했다.
잠시 후 고양경찰서 형사들이 나를 데리러 왔고, 그들과 함께 2019년 8월 17일 새벽 1시쯤 고양경찰서에 도착해, 곧바로 심야조사를 받고는 유치장에 감금되었다.
그러다 오전 9시 무렵인가 다시 고양경찰서 형사들과 함께 짜장모텔로 가서 현장검증을 했다.
과학수사대와 형사들은 내가 알려주는데로 현장감식을 진행했고, 범행도구들도 내가 직접 다 찾아주었다.
8월 19일 월요일에 2차 조사를 받고,
8월 20일 화요일엔 심리검사까지 받았다.
8월 21일 나의 신상정보가 언론에 공개되었다.
8월 23일 부터 9월 11일 까지는 검찰조사를 받았고,
11월 5일 화요일, 의정부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 후 우연히도 검찰과 내가 동시에 11월 11일 같은 날 항소하여, 현재 서울구치소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은 2019년 12월 4일~5일에 거쳐 작성되었다.
모든 내용에서 구체적인 설명이나 묘사가 생략된 곳이 많으며, 사건의 진실에 큰 영향이 없는 부분이라 생각되어 생략하였다.
이 긴 글을 짧게 정리해서 보자면, 원고가 피고에게
-반말로 시비를 걸고,
-다른 모텔로 가라하자 피고의 배를 때리고,
-주먹으로 피고의 얼굴을 때릴 것처럼 위협하고,
-담배연기를 피고 얼굴을 향해 뿜어내며,
-끝내 돈도 안내고 무전취식까지 하다가,
화가 난 피고에게 둔기로 뒤통수를 처맞고 뒤진 사건이다.
이 후 사건은폐를 위해 피고는 원고의 사체를 토막내어 한강에 유기했고, 사체가 발견되어 이슈가 되자, 피고 장대호는 심리적 압박감을 느껴 자수했다.
이것이 한강몸통시신사건의 전말이다.
조금 더 짧게 요약하자면,
<양아치가 장대호에게 행패부리다, 둔기에 맞아 죽은 사건>
이렇게 정의 할 수 있다.
참고로 나는 이놈을 ‘조선족 포주 양아치’ 라고 부르길 좋아한다.
원심국선변호사로부터, 원고가 귀화한 조선족이라는 사실과, 보도방 관련업자라는 수사기록 내용을 확인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예상한 ‘조선족 포주’란 추측이 팩트로 확인된 순간, 나의 죄책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게다가 나를 위력으로 굴복시켜 돈도 안내고 무전취신까지 했으니, 양아치라는 표현도 사전적 의미에 부합한다.
‘조선족 포주 양아치가 모텔종업원에게 행패부리다가, 화가 난 모텔 종업원에게 맞아 죽은 사건’
나는 이와같이 세상에 알려지길 원했다.
그러나 언론사들은 왜 죽였는가 보다는, 어떻게 죽였는가만 집중보도를 하였고, 내가 반성하지 않는다는 점만을 부각시켜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몰이를 하였다.
가령 어떤 언론사는 내가 지난 원심 심리공판 최후발언에서,
“사형을 당해도 괜찮다.”고 말했다며 보도했으나, 사실이 아니다.
나는 원심 최후발언에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착한사람을 죽인거라면 반성해야겠지만 본 사건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반성하지 않습니다.”
딱 이렇게만 말했다.
그런데 일부 언론사와 검찰의 항소이유서에 보면, 마치 내스스로 사형을 원하고 있다는 소설을 써서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어떤 언론사는 내가 지난 11월 5일 원심 선고 공판에서, 살인, 사체손괴, 사체은닉 혐의를 모두 인정한다고 말했다며 보도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나는 선고 때 발언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재판장의 말만 듣고 퇴장하였다.
게다가 원심 재판장은 선고 판결문을 낭독할 때,
‘원고가 내일 아침에 숙박비를 주겠다고 했는데도, 피고는 원고를 살해하였다.’ 라고 공표한 사실이 있는데, 이는 실제 판결문에는 쓰여있지 않은 문장이며, 공소장에도 없는 문장이다.
죽은 원고가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내일 아침에 얘기하자고.’였다.
‘내일 아침에 얘기하자고.’ 이 문장과,
‘내일 아침에 숙박비를 주겠다.’ 이 문장은,
의미가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지난 원심 선고에서 재판장은, 기자들 들으란 듯이 진술기록을 와전시켜 공표하였다.
더욱이 판결문엔, 피고 장대호는 오만하다, 비겁하고 교활하다란 표현을 써가며, 나를 더욱 흉악하게 보여지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노력은, 검찰의 항소이유서에도 잘 나타나있다.
내가 원심 공판 때 유족들을 향해 윙크를 하며, 비웃으면서 유린하였다고 매도하는 것이다.
나는 원심 선고 때까지 유족이 누구인지 얼굴도 모르는 상태였으며 지난 원심 심리공판을 마치고 퇴장할 무렵, 방청객석에서 갑자기 두세명 정도가 일어나 “장대호 개se끼야!” 이렇게 욕을 하며 내게 달려든 사실이 있고, 그때 내가 당황하여 눈을 깜빡이며 허허허 소리내 웃으며 퇴장한 사실이 있다.
당시 내게 욕을 하며 갑자기 달려든 사람들을, 의정부 교도관들이 막아서며 재지한 사실이 있으므로, 교도관들에게 내가 유족들을 조롱하거나 유린하였는지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N.D-
<일 문 일 답>
Q 반성한다고 하는게 유리하지 않겠나?
A 일본이 미국령의 작은 섬하나 공격했다는 이유로, 미국은 일본의 본토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려 멸망시켰다.
그러나 아무도 미국을 전범국가라 비난하지 않는다.
일본이 먼저 미국에 공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본 사건의 경우도, 죽은 원고가 먼저 내게 공격을 가하였다.
따라서 사과의 순서도, 죽은 원고가 먼저 하는게 맞다.
이것이 내가 반성을 안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죄의 무게를 따지자면 내 잘못이 크다.
내가 중죄인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사과하고 반성을 하는 것은 선후의 문제다.
나는 아직 원고로부터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다.
Q 진술 외에, 죽은 원고가 행패를 부린 양아치였다는 증거는?
A 나의 진술을 신뢰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 진술을 뒤집는 새로운 살해동기가 수사기관의 노력에 의해 밝혀져야 하는데, 아직까지 내가 주장하는 살해동기 이외의 다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식이면, 내가 계획적이고 고의적으로 살인을 했다는 검찰측의 공소내용과 원심판결문의 내용도 삭제되어야 한다.
나의 진술 이외에, 내가 어떻게 계획하고 살인을 한 것인지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진술을 토대로 이뤄진 증거 외에,
내가 살인, 사체손괴, 사체은닉을 행하던 장면이 기록된 CCTV라던가, 그를 목격한 증인도 없다.
이 사건의 공소장 내용 대부분이, 나의 진술을 토대로 구성되어있다.
따라서 특정부분의 진술만 신뢰하여 사실로 판단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더욱이 나는 원고를 더 나쁘게 표현할 수 있었음에도, 있었던 일 그대로만 진술하였다.
죽은 원고는 그의 주먹으로 내 복부를 노크하듯 네차례 정도 가격하였고, 내 얼굴에다 담배연기를 한차례 내뿜었을 뿐이다.
이에 앙심을 품은 내가 보복한 것이며, 나의 행위는 원고가 내게 저지른 잘못에 비할 때, 크게 지나친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아준 것 뿐이다.
이처럼 내가 주장하는 살해동기를 부정한다면, 부정하는 쪽에서 다른 동기를 증명하면 될 일이다.
Q 사형을 바라나?
A 아니다.
다만, 사형을 면할 절대조건이 반성과 뉘우치는 태도라면, 나는 기꺼이 사형을 받겠다.
Q 이 글을 쓰는 이유는?
A 이 사건의 모든 내용이 특정인에 의한 편향된 편집없이 세상에 공개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 글의 모든 내용이, 기레기들의 가공을 거치지 않고, 모든 이가 읽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A 검찰의 항소이유서에 보면, 내가 온 국민이 경악할 정도로 이 사회에 물의를 끼친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데, 나는 이 사회와 국민여러분께 그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았다.
온 국민이 경악할 정도로 이 사회에 피해를 끼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최순실, 김성태, 조국 이런 사람들이다.
그리고 I.M.F 사태를 몰고온 김영삼과 그 똘마니들이 국민여러분께 피해를 준 흉악범들이다.
나는 한개인에게 보복살인을 저지른 그냥 머리가 나쁜 범죄자일 뿐이다.
여러분들은 부디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2019년 12월 중 서울구치소 3507 장대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