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모두 바다가 되게 하는건 아니다.
한창 팔팔하던 그는 호기롭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상사였고, 자신감이 넘쳐나다 못해 언제나 아슬아슬하기까지 했다. 사실이 아님에도 그가 주장하는 바는 저항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 강단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5시에 퇴근이라 해도 누구도 회사문을 나서기 어렵던 그 시절, 밀린 일도 개념치 않고 5시면 당당하게 퇴근을 하던 그는 모두에게 상대적인 열등감까지 주었다.
거의 20년가까이 흐른후 다시 만난 그는 당황스러웠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그의 눈빛은 흔들리기 일쑤였고, 입가에는 어색한 미소를 자주 띄웠다. 결단할 일에 대해서는 자신없어 주저하고, 누군가에게 의견을 구하는 모습은 경청이라기보다는 비굴해 보이기까지 했다. 물러터진 두부 한가운데 젓가락이 쑥 들어가듯 어떤 이야기에도 그는 순하게 반응했다.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 듣는 것과 말하는 것 모두 순해진 것일까. 나이들어가며 무기력해진다는 것이 순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비겁해지는 것일까. 차라리 거칠고 막무가내 그 모습 그대로이면 좋았을텐데, 세월의 흉한 발톱 자국이 선명하게 얼굴에 새겨진 그가 처연했다.
나이를 먹어 저절로 깊어지는게 없나보다 . 세월은 저절로 내려지는 훈장이 아닌가보다. 시간이 저절로 인격을 만들어 주지 않을까, 그렇게 순하게 내미는 손을 세월은 매몰차게 뿌리친다. 비굴함이 순함을 대신하고, 우유부단함은 사려깊음으로 대체된다. 손 놓고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잔인하게 배신을 해와도 늙은 팔뚝에는 이제 저항할 힘이 없다. 저절로 흘러가는 강물은 없다. 굽이를 지나 바위를 넘고, 와선하다 완류가되기도 하고, 혼류하다 은류가 되기도 하고 거슬러 오는 고기떼도 만나며 그렇게 흘러 흘러 가야 비로소 바다가 된다.
달리는 기차처럼 나의 하루가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