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칠! 같이 가자고.”
파이식의 부름에 프란칠이 뒤를 홱 돌아보며 쏘아붙였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그럼 뭐라 부르지?"
"이름을 불러! 이름을."
"참나 그런 호칭 정도야 내 마음대로 좀 부르고 싶은데?"
프란칠은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파이식은 희죽 웃으며 얼른 그 뒤를 쫓았다.
"오늘은 또 뭐라던가? 프란칠-"
프란칠이 입술을 삐죽이며 답했다.
"새로운 실험체가 도착했어. 꽤 특별하고 흥미로운."
"우리 대단하신 차원우주생물연구본부의 새로운 실험체야 늘 특별하고 흥미로운 법이지."
"아니 이번엔 좀 달라. 탐사팀에서 포획한 개체가 아니야. 제 발로 나타났거든."
"제 발로 나타나?"
"단독개체는 아니고 한 무리가 나타났어. 재미있는 건 이들이 트리오콜라후스트 습지공원에 갑자기 나타나선 아이들을 공격했다는 거야."
"뭐? 후스트 습지공원에 나타났다고? 맙소사."
"그래 맞아. 충분히 놀랄 일이지. 그런데 제대로 좀 말해주겠어? 그런 식으로 말을 줄이는 건 어린애들뿐이야. 트리오콜라후스트야. 후스트가 아니고."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딱딱하게 굴지 말라고. 아무튼 아이들은 무사하고?”
프란칠은 불만스런 표정으로 답했다.
"무사해. 이들은 일종의 레이저 광선을 방출하는 무기를 썼는데 다행히 그 위력이 강력하지 않아서 아이들의 피부를 조금 긁히게 하는데 그쳤다더군. 탄자가속방식 무기도 있었고 그건 위력이 더 강력해 보였지만 그걸 사용하기 전에 제압당했지."
"허어? 그래? 갑자기 공격을 해온 이유는 뭐지?"
"아이들의 증언과 영상 기록에 의하면 아이들을 포획하려고 시도한 것 같아."
파이식이 프란칠의 말에 피식 웃더니 말했다.
"그건 우리 탐사팀들이 잘 하는 일 아닌가?"
“뭐 그렇지. 아무튼 생존자가 있으면 여기까지 온 목적을 좀 물어봐도 좋았겠지만.........”
"응?"
"한 개체도 남김없이 모조리 사살 당했거든."
"뭐? 어쩌다?"
"일단 대부분은 아이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었고, 나머지는 공원경비원에게 사살됐지."
"엥?"
"기술수준이 상당하고 지적능력도 일정수준 이상 갖춘 것 같았지만, 그들은 너무나 약하고 작았지. 거기다 너무 사납고 공격적이라 사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
"약해빠진 주제에 무모한 짓들을 시도했군."
“그들이 타고 온 우주선도 발견됐어. 다차원이동기술까지 보유한 것 같더군.”
"허어 그래? 대단한데?"
"조악한 수준이지만, 어쨌든 방호를 위해 차원 상에 펼쳐둔 에너지 장을 헤치고 여기까지 온 거니까 대단하긴 하지. 우연인 것 같긴 하지만........"
"우연이든 뭐든 또 나타날 수도 있다는 의미 아닌가? 대체 어디서 온 거지?"
"그야 이미 알아냈지."
"뭐? 벌써?"
"아니 알아냈다는 표현보다는 이미 알고 있던 곳이란 표현이 맞겠지. 파이식- 자네도 알 고 있는 곳일 걸?"
“어딘데?”
“듣고 놀라지 말라고.”
“어서 말해주기나 해!”
파이식이 다그치자 프란칠이 익살맞은 표정으로 잠시 또 뜸을 들였다. 파이식이 당장 불같이 화를 낼 것만 같은 표정으로 노려보자 프란칠이 그제야 말을 했다.
“21번 차원우주의 지구야. 찾아온 녀석들은 지구인이지. 너도 알잖아? 인간종이야.”
“허? 지구인? 인간? 그들이 여기까지 왔다고?”
“그렇다니까! 정말 재미있지 않나? 이러니 특별하지 않을 수 없지.”
“참내 대체.........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뭐지?”
“잠깐.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프란칠이 은은하게 빛을 내는 푸르고 투명한 오른쪽 팔을 슬며시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순간 공간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쫙 째지며 벌어졌다. 타원형의 틈이 생겼다. 틈 안쪽으로 벽이 하얀 상당히 넓은 공간이 보였다. 프란칠과 파이식이 안으로 걸음을 옮기자 이내 틈은 사라졌다.
공간은 일종의 수술실처럼 보였는데 아주 환했다. 천장과 바닥의 하얀 벽이 스스로 빛을 뿜고 있었다. 뾰족한 바늘과 핀 같은 것들이 둥둥 오와 열을 맞춰 공중에 떠 있었고, 방 중앙에 놓인 거대한 검은 침상 위에 벌거벗겨진 인간의 시신 하나가 눕혀져있었다.
파이식이 말했다.
“바로 시작할거야?”
“그러자고.”
프란칠과 파이식은 시신을 가운데 두고, 마주 섰다. 파이식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확보한 개체는 고작 이거 하나야? 왜 이렇게 작아? 아이가 여기까지 온 거야?”
“아니 성인이야. 탐사팀 보고서 안 봤어? 인간 개체는 원래 작아. 이번에 발견된 개체들 중 가장 큰 녀석이 놀이터에서 놀던 어린아이들 절반 정도였어.”
“탐사팀 보고서 따위를 내가 읽어볼 거 같아? 그 거들먹거리는 놈들.”
“그쯤 해둬.”
“그런데 이 인간이란 종. 우리랑 겉모습이 상당히 흡사하군. 작고 광막도 없지만.”
“그래. 탐사팀의 하푸락 박사는 다차원 다중우주에 존재하는 다양한 우리 모습 중 하나라는 설까지 내놨지.”
“하푸락? 지난 번 34번 차원우주의 리오크라인들도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다는 말을 했던 그 탐사팀의 멍청이 하푸락 말이지? 이쯤 되면 연구라기보다는 그냥 습관적으로 말을 하는 것 뿐이 아닐까?”
“파이식- 그쯤 해두라고.”
프란칠이 말을 마치곤 작은 핀 같은 것을 집어 시신 위로 스윽 움직이자 목에서 생식기 위까지 세로로 깨끗하게 갈라졌다. 신기하게도 피나 체액은 전혀 흐르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투명한 개복기기 따위가 갈라진 배 붙들고 열어젖히듯, 갈라진 가슴과 배가 쩍 벌어졌다. 심장과 내장이 드러났다. 파이식은 연신 허공 위로 손가락을 놀리며 말했다.
“안은 완전히 다른 걸?”
“그래. 겉은 비슷할지 몰라도 우리와 각 생체, 감각기관의 구조와 기능, 대사, 순환, 연결 자체가 완전히 달라. 미개한 미지의 존재랄까? 내가 뭐랬어? 보고서를 보면 다 나와 있어. 그리고 가장 차이가 나는 건 여기야.”
프란칠은 이번엔 인간의 머리를, 두개골을 가르기 시작했다. 이마부터 시작해 원형으로 머리가 깔끔하게 갈라졌다. 뚜껑이 떨어져 나가듯 이마 위쪽이 떨어져 나갔다. 뒤이어 파이식이 손가락을 놀리자 인간의 두뇌가 절제되어 튀어나오더니 허공에 둥둥 떴다.
“가볍네?”
“일단 작잖아.”
“그게 문제가 아니고, 전체적으로 효율이 너무 떨어져 보이는데.”
“그래. 그러니 입으로만 대화하고, 손으로만 물건을 집을 수 있지.”
“참 불편하겠어.”
“그야 인간은 날 때부터 저리 생겼고, 전 지구인이 그러하니 문제 될 거야 없지. 저래 뵈도 저 정도 두뇌면 지금까지 발견된 21번 차원우주의 생명체 중에선 가장 진보한 수준이야. 지능도 우수하고, 이성도 존재하지. 그러니 여기까지 올 우주선도 만들지 않았겠어?”
“그런가? 뭐 그렇다 치자. 세세한건 연구팀에게 맡기자고. 그나저나 자네 아직 내 질문에 답을 안했는데?”
“무슨?”
“인간들이 여기에 왜 나타났냐고.”
“그야 모르지.”
파이식이 짜증을 부렸다.
“뭐야? 아까는 안다는 듯 말하더니.”
“추측이야 할 수 있으니까.”
“추측?”
“그래 자네도 추측이야 할 수 있지.”
“귀찮으니 말해봐.”
“쯧쯧........ 하여간.......... 우리 하는 일에 관심 좀 갖게나.”
“해부팀이 해부만 잘하면 됐지. 어서 말이나 해보게.”
둘은 연신 대화를 나누면서도, 해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인간의 시신은 분해되어 허공에 둥둥 뜬 채로 착착 진열되어가고 있었다. 입을 열어 대화할 필요가 없으니 다른 일과 병행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텔레파시가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이었다.
프란칠이 말을 이었다.
"우선 이거부터 말해주지. 본부가 탐사팀이 작성한 21번 차원우주의 지구와 인간 보고서를 차원우주 균형위원회에 넘겼지."
“균형위원회에?”
“응. 인간종이 좀 독특해서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결과 나왔어?”
“그래. 위원회는 인간종의 말살을 결정했어. 물론 실험체 및 다양성 보존을 위한 개체군 정도는 남겨놓겠지.”
“그렇군.”
“뭐 그대로 두면 어차피 알아서 말살될 텐데 지구라는 행성이 좀 가치가 있다 보니 그런 결정이 내려진 거지. 21번 차원우주에서 가장 생명체의 발현과 진화가 활발한 곳이니까.”
“어차피 말살되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이번엔 프란칠이 짜증을 냈다.
“그러게 보고서를 좀 보라고! 인간은 호전성과 이기심 거기에 자기 파괴의 본성까지 지녀서 평화와 공존에 미숙해. 그냥 거기까지면 좋은데 이 인간들이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기술과 이성을 지녔다는 게 문제야. 거만하고 제멋대로거든. 지구라는 행성의 주인이 자신들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어. 거기다 도통 적당히-라는 걸 몰라. 덕분에 지금 지구라는 행성은 엉망진창이야. 인간 외에 남아있는 종도 거의 없다고.”
“정말?”
“그렇다니까. 자기들 입맛에 맞춰 행성의 환경을 바꾸고 끼워 맞추지. 다른 생명체들까지도 자기들 멋대로 취급하지. 자신들 외의 종에겐 한없이 잔인하고 자신들에겐 한없이 관대해. 같잖은 철학이니 종교니 들먹이면서 말이야. 그러다보니 뭐 그렇게 엉망이 된 거야. 또 그 대단한 기술로 엄청난 무기까지 만들어서 서로 싸우다보니 자기들끼리 죽이는 것도 모자라 다른 종은 물론 지구를 박살 직전까지 몰고 간 거지. 우리들 시각에서야 애들 장난 같지만, 21번 차원우주의 지구엔 치명적이야. 그러니 행성을 최대한 온전히 보존해두려면 인간을 하루 빨리 말살시켜야 하지. 그리고 이 정도 얘기했으면 답이 나올 거야. 인간들이 여기까지 왜 오게 됐는지 말이야.”
“혹시 이주할 행성이라도 찾고 있는 건가?”
“정답! 아직 완전히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거의 확실하다고 봐. 지구를 엉망으로 해놨으니 이제 또 제멋대로 바꾸고 파괴할 다른 청정행성을 찾아다니고 있는 거지. 분명해.”
“진짜 이기적인 녀석들이네.”
“그래도 그 조그만 녀석들이 대단하긴 하지. 어쨌든 우리 앞마당까지 치고 들어온 셈이니까. 일이 좀 우습게 됐지. 인류말살은 지구 시간으로 3일 뒤에 시작될 거야. 이번 사건으로 앞당겨졌다고 해.”
“그럼 인간은 완전히 멸종이야?”
“그건 아니야. 지구에선 퇴출이지만, 알다시피 인간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아. 아까 말했듯 하푸락도 그렇고. 몇몇 개체군을 이리로 데려와서 우리가 직접 관리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쳇- 자원이 남아도나보군.”
“인간개체를 몇 기른다고 해서 큰 손해를 볼 일은 아닐 거야. 균형 위원회도 완전한 말살은 지양하고 있으니까.”
“말하는 걸 보니. 너도 관심이 있는 모양이구나? 안 그래? 프란칠?”
“부정하진 않을게.”
“아무튼 좋아. 슬슬 마무리 하자.”
프란칠과 파이식은 이제 완전히 분해된 인간의 신체를 기능에 따라 빠르게 분류하기 시작했다. 물론 손을 쓰진 않았다. 그러는 동안 길고 투명한 관이 바닥에서 천천히 솟아올랐다. 잠시 뒤, 허공에 떠 있던 잘 다듬어진 두뇌와 장기들, 피부조직과 분리된 뼈가 속속 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프란칠과 파이식은 그저 정신을 집중하며 손가락을 이리저리 놀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파이식이 퍼뜩 뭔가 떠올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차차! 이제 생각났다. 위원회의 종 말살 결정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잖아?”
프란칠은 계속 분류작업에 열중하며 답했다.
“그래. 정확히 네 번째지.”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가? 전에도 분명 지구의 인간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
“맞아. 그런데 그땐 13번 차원우주에서 발견된 지구의 인간종이었지. 이번엔 21번 차원우주의 지구야.”
“그렇지? 그런데 이거 이 정도면 이거 뭔가 형평성을 의심해봐야 하는 거 아냐? 균형 위원회가 일을 똑바로 하고 있는 거 맞아? 네 번 중 두 번이라니! 왜 인간에게만 늘 말살 결정이 떨어지는 거지?”
프란칠이 코웃음을 쳤다.
“이봐- 뒷북치지 마. 안 그래도 그 얘기가 나왔으니까. 재검토를 하자는 말도 있었어.”
“그런데?”
“당연히 명백한 자료와 데이터가 있는데, 말살 결정은 타당한 것으로 결론이 났지. 인간종이 여러 우주에서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하푸락이 주장하는 이론대로라면 우리도 그 중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연이어 두 번이나 인간이란 이름을 가진 종에게 말살 결정이 떨어진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 꽤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두 우주에서 발견된 인간이란 이름의 종이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모두 행성 차원의 올바른 공존과 균형을 잡아가는데 실패를 한 셈이야. 13번 차원우주의 인간의 경우 이번에 발견된 인간들보다 미개했지만, 환경파괴지수와 불균형지수는 비슷했지.”
“그래? 어떤 면에선 참 대단한 녀석들이군? 그런데 13번 때도 인간 개체군을 남겨뒀을 거 아냐? 왜 난 전혀 모르고 있던 거지?”
“응 그땐 말살과 보존 작업을 우리가 하지 않았어, 마프카락에서 처리했지.”
“마프카락? 도통 알 수 없는 짓만 하는 그 변태 놈들?”
“하하- 그냥 좀 독특한 거지. 어쨌든 우린 마프카락보단 더 깔끔하게 처리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거야. 마프카락은 소행성 미사일을 기동해서 인간 외에도 지구에 살고 있던 많은 생물종을 멸종시켰거든. 물론 마프카락이야 늘 그렇게 하지만, 깔끔하다고 볼 수는 없지. 마프카락은 인간이외의 생물종도 인간의 손을 타고 영향을 받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으니까. 일단 과업이 그쪽으로 넘어가면 어떻게 하든 존중해줘야지.”
“그놈들은 늘 그런 식이야. 다 지우고 새로 그리려고 하지.”
“뭐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야-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새끼발톱이 유리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프란칠이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릴 냈다.
“끝났다.”
“수고했어.”
“파이식.”
“응?”
“제발 보고서 좀 읽어.”
“쳇 알겠어. 한 번 읽어보지 전송해줘.”
“그래.”
기분 좋게 대답한 프란칠이 손을 슬쩍 들어올렸다. 일렁이는 아지랑이 속에 공간이 찢기듯 세로로 쫙 벌어지며 틈이 다시 나타났다. 프란칠과 파이식은 생겨난 틈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투명한 관도 천천히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검은 침상은 마치 보호색이 씌워진 것 마냥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서서히 천장과 벽면에서 뿜는 빛이 사라져갔다.
텅 빈 해부실엔 어둠과 정적만이 남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