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동과 망원동이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다. 영원히 함께 붙어 있을 것 같았던 난지도와 매봉산 사이를 8차선 도로가 비웃듯 갈라 버려 망원동은 상암동과 더욱 가까워졌다. 돌산이라 불린 반대편 매봉산 중턱도 큰 도로가 밀고 지나가서 상암동은 기꺼이 도심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초등 4학년의 상암동은 외딴섬 같은 동네였다. 망원동을 가기 위해서는 구시가지를 따라 끝까지 가서 지금의 월드컵 터널 쪽으로 우회전 후 난지도 끝자락의 땅콩밭까지 간 다음 좌회전해야 했다. (정확한 위치는 월드컵 터널이 아니라 그 옆 개천가 따라 있던 길이었는데 지금은 공원과 월드컵 경기장 밑으로 사라졌다.) 그러고도 느낌상 한참을 더 가야 망원동을 만날 수 있었다. 월드컵 터널이 있는 그 길은 당시 비포장도로였다. 매봉산을 크게 돌아서 가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짧은 거리는 아니었다. 초등생에게 그 길은 꽤나 길고 난이도가 높은 미로찾기였다. 심지어 망원동이 그쯤에 있을 거라고 짐작만 했지 나는 그 길을 지나 가본 적도 없었다. 마포구청 쪽과 모래내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림잡아 거기쯤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친구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망원동으로 출발했다. 속주머니에는 카드 한 장이 있었다. 그날은 매우 따뜻했다. 눈은 모두 녹아서 길거리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자전거를 타기에 겨울치고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구시가지를 벗어날 때까지는 그랬다. 구시가지를 지나 우회전하여 난지도 땅콩밭으로 향하는 비포장도로는 진창으로 변해 있었다. 자전거 바퀴와 바퀴 덮개 사이에 진흙이 끼어 굴러가지 않았다. 친구와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려 했으나 그마저 여의치 않았다. 우리에게 꽤 무거웠던 자전거는 끌고 가기조차 벅찼다. 신발은 진흙 범벅이 되었고 양말도 순식간에 젖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았던 그 길은 크리스마스이브의 아침을 우리에게만 허락해 주었다. 우리 둘만이 그 길위에서 사투를 벌였다. 길고 긴 진흙탕 길을 슬로우 모션으로 빠져나온 우리는 남은 길을 거지꼴로 지날 수밖에 없었다. 망원동에 가까워질수록 사람의 발길이 거리를 점점 채워갔다.
승훈이네 집 앞에서 미리 카드를 꺼냈다. 만나자마자 안부 인사 겸 카드를 먼저 건네주고 싶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승훈이가 아버지와 함께 문을 열었다. 놀란 표정의 승훈이는 아버지와 지금 외출하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조금 뻘쭘했으나 카드를 전해준 다음 간단한 인사말을 남기고 마치 옆집에서 찾아온 사람처럼 쿨하게 돌아섰다. 승훈이가 들어오라는 말을 했어도 그의 부모님은 거지 두 마리를 집 안으로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승훈이와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다시 찾기는 어려운 길이었다.
친구와 나는 왔던 길을 버리고 좋은 길을 따라가기로 했다. 마포구청 쪽을 지나 모래내로 가서 상암동으로 향할 계획을 세웠다. 포장도로라 자전거 타기가 한결 수월한 길이었다. 거의 두 배 이상 먼 거리여도 진창길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철도 건널목, 일명 땡땡 거리를 지나 모래내로 진입해서 내리막길 아스팔트 대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그때 뒷자리에 타고 있던 친구가 빨리 세우라고 재촉했다. 모자가 떨어져 있는데 주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전거에서 내려 검은색 털모자를 줍기 위해 이십 미터 쯤 뒤로 돌아갔다. 검은색 털모자 안에는 우리같이 가난한 초등학생은 꿈도 꾸지 못할만한 것이 들어있었다. 만 원짜리 열 장이었다. 큰돈이란 건 알았으나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큰 돈인지 알 수 없었다. 넋 놓고 보다가 잘 챙겨서 우리 동네로 돌아왔다. 친구와 나는 자주 가던 매봉산 자락에 올라가 앉아서 이 돈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이야기했다. 파출소에 가져가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오만 원씩 나눠 갖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이브는 그렇게 지나갔고 하룻밤만 더 자면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받는 날이었다. 나는 분명 그때까지도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선물이라고 해봐야 공책이나 크레용 같은 필수 학용품이었지만, 그래도 선물은 마음을 설레게 했다. 산타가 주시는 것 아닌가. 뻔한 것이라 해도 여러 가지 뻔한 것 중 어떤 뻔한 것이 선물로 둔갑할지는 모르는 일이라서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에는 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몰래 선물을 놓고 가는 산타를 만나고 싶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크리스마스의 아침이 밝았다. 트리 같은 건 없었기 때문에 선물은 항상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그날 나는 자잘한 학용품들을 선물 받았다. '학용품'이 아니라 '학용품들'이다. 또한 학용품들 옆에는 안쪽에 털이 복실복실하게 달린 부츠가 놓여 있었다. 산타가 번지수를 잘못 짚었나. 산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분에 넘치는 선물 공세를 퍼부었다.
친구와 나눠 가진 오만 원은 어린 나에게는 큰돈이라서 어머니께 드렸었다. 산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슬픈 현실을 깨닫고 나서야 그 선물이 오만 원과 바꾼 내 양심이란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어머니께 그 사실을 확인받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부츠값을 제외한 훨씬 큰 삥땅을 챙기셨을 것이다.
-끝-
많이 고마웠습니다. 새해에는 더 좋은 글 쓰시고, 돼지 저금통 빵빵하게 채우시길 바랍니다 ^^
돼지가 점점 홀쪽해져 가네요..ㅎㅎ
19년에는 우리 모두 빵빵해지길 기원해 봅니다.ㅎ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ㅎㅎ
보클왔어요~
보클 감사합니다.ㅎㅎ
ㅋㅋㅋㅋㅋㅋ
그것이 산타의 선물이었네요 ^^*
산타의 선물이었는데,,, 좀 거시기 합니다..ㅋㅋ
오우~ 그 때의 5만원이면 큰 크리스마스 선물이네요 ㅎ
당시 오만원은 적어도 지금 5에서 10배 정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엊그제 글에서 느꼈는데...초졸이셨습니까...ㅎㅎㅎ
제가 성산대교 상암 저 너머에, 지금과는 다른 초딩때 느끼는 멀고도 먼 그 거리에서 살았어요. 그때는 여의도를 자전거 타고 가기도 힘들었는데 말이죠 ㅎㅎㅎ
지금도 의심스럽습니다. 국졸 아니신지요 ㅎㅎㅎㅎㅎㅎ
새 해 유피님 가족 모두가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언감 초졸입니꽈... 당연히 국졸입니다. 단지 국민학교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ㅎㅎ
망원동 쪽에서 사셨군요..반갑습니다..
거리상으로는 굉장한 인연이네요..ㅎㅎㅎ
핵전쟁으로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우리 모두 행복하게만 지내면 좋겠습니다.ㅎㅎ
몇 일 후 세뱃돈 삥땅이 기다리고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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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으로 일부 돌아왔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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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니 .. 좀 슬픈데요 ?
친구가 카드까지 전달하러 먼길을 왔는데 ..
이후에 동화를 듣지 못하셔서 아쉬우셨을꺼같아요.
철들기 전이었으니 만나러 간다는 의미를 잘 몰랐을 거에요.
좀 섭섭하긴 했던 것 같은데 사실 곧바로 잊어버렸답니다.ㅎㅎ
10만원, 어린나이에는 적은 돈이 아니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스팀이 제자리를 찾아서 모두 행복해지면 좋겠네요.
그 고생을 해서 찾아갔는데 겨우 카드만 주고 올 수 밖에 없었다니 많이 아쉽네요~
산타를 믿을 때까진 순수함이 남아 있는 거겠죠?ㅎㅎ
동심의 세계로 잠시 놀러갔다 온 것 같은 기분좋은 이야기 잘 봤습니다~^^
기분 좋은 이야기였다니 너무 고맙습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금방 잊고 나중에 철들고 나서야 다시 생각났다는...ㅠㅠ
요즘 초등 4학년이 산타를 믿지는 않겠지요...ㅎㅎ
잊지 못할 추억이네요.
우린 산타 자체를 모르고 자랐다는 ㅎ
앗,, 형님...ㅎㅎ
이제와 돌이켜보면 잊을 수 없고 잊고싶지 않은 추억이 참 많습니다.
저도 시골에서 친구집을 자전거타고 돌아다녔었는데... 보클하고가요~^^
감사합니다..보클 화이팅.. 시골집 자전거도 화이팅...~~
어릴때는 작은 돈도 정말 크게 느껴지죠ㅎ
오늘도 디클릭!
그렇기도 하지만 그 당시 저 돈은 길에서 줍기에는 엄청 큰돈이었습니다.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불이님도 새해에는 소망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길 바랍니다.
책으로도 많은 분들이 불이님과 만나기를 기원합니다.ㅎ
유치원 시절, 산타할아버지가 유치원에 오셔서 선물을 나누어주시는데 선뜻 나서질 못한 적이 있었지요. 어린 마음에 찔리는 게 많아서...ㅋ
예민하셨나봐요. 산타할아버지는 다 알고 계시지만 용서도 잘 하신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