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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천부적 감각에 의존한 무뎃뽀 투자

in #coinkorea7 years ago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조총은 노부나가 이전부터 전장의 주력 무기 중 하나였습니다. 노부나가는 엄청난 경제력과 더불어 사카이 지방을 지배하면서 나온 화약을 기반으로 물량을 쏟아낸 것에 가깝습니다. 딱히 엄청난 혜안이 있었다기보다 쇼미더머니에 가깝죠.

실제 1333~1457년 남북조시대(태평기)에 나온 전투 보고서들을 분석해보면 화살, 돌팔매에 의한 부상이 90%에 육박하며(스즈키 마사야의 연구자료), 센고쿠 시대의 경우 이미 화살류가 40.3%, 철포가 19.1%, 돌팔매가 10.0% 정도입니다. 철포부상 이후의 사료만 집계하면 부상원인에 철포류가 44%에 이를 정도죠.

나가시노 전투 당시 노부나가 측 세력은 어찌보더라도 이길 수 밖에 없는 병력차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다케다 카츠요리의 병력은 1.5만, 오다 연합측은 3.8만이었습니다. 또한, 카츠요리의 병력은 도비노스 산 전투에서 다케다 노부자네를 포함한 무장과 병력을 크게 잃은데다, (연합군 사상자 6천, 다케다군 1.2만. 부상 병력의 질도 대부분 아시가루였던 연합군에 비해 유력 무장과 사무라이를 잃은 다케다군은 절망적이었습니다.) 기병 돌격으로 인한 충격을 카운터치기 위한 울타리가 있었다는 점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실제 기병과 총병의 전투는 임진왜란에서 극명하게 답을 보여줍니다. 선조 이후 중장기병에서 경장궁기병으로 대체된 신립의 군대가 죽을 쑨 반면, 중장기병의 충격전술 중심으로 돌아간 명나라 기병대와의 싸움에서 왜군은 야전에서 만날때마다 박살날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를 해석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오타 규이치의 '신장공기'에도 3단 철포술에 대해선 언급되지 않고 있어요. 오히려 처음 메이지 시대에 나온 '일본전사'에서 에도 초기에 나온 전쟁소설인 오제 호안의 '신장기'를 그대로 카피하면서 생긴 의도적 우상화에 가깝다고 봅니다.

Ref)
鈴木真哉, 刀と首取り, 平凡社(Tokyo), 2000.
鈴木真哉,, 謎とき日本合戦史, 講談社(Tokyo), 2001.
鈴木真哉, 鉄砲隊と騎馬軍団, 洋泉社(Tokyo),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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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일본역사 관심 많습니다^^
자세한 분석 잼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오다군이 무역등으로 경제적 부가 풍성하니 가능했을겁니다.

그리고 저는 무기도 무기지만 지휘관과 장교들의 풍부한 실전경험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임란당시 명나라 군대중 많은 활약을 한 군대는 실전경험 풍부한 척가군이었고
행주대첩에서 완패를 한 일본 장군은 실전경험이 부족한 행정관료
이시다 미쓰나리로 알고 있습니다.

전국시대 분석 너무 잼있게 잘 보았습니다^^
다음에도 많이 포스팅 해 주시고
좋은 포스팅은 링크 부탁드립니다 ^^

그런데 우린 왜 그란님 포스팅에서 이런 뻘글을 쓰고 있을까요(...

네 좀 죄송하네요 ㅠㅠ
@noctisk 님께서 센고꾸시대 저 전투에 대한 분석글
하나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