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 시세가 조금 회복세인 요즘, 6월 지방선거 이후 다시 정부가 코인 시장을 압박할 것이라는 루머가 자주 떠돌고 있습니다. 시장 참여자들이 투자 과정에서 정치 권력에 대해 지닌 공포가 그와 같은 루머로 떠도는 것이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만, 이러한 공포를 자극하여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는 집단들만 살판 나서 날뛰는 꼴을 보려니 마음 한 구석이 씁쓰름하기도 합니다.
일요일 오늘, 일찍 잠에서 깨서 부산스럽게 오가며 노는 아이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 아침입니다. 맞벌이를 오래 했으므로 마흔이 다 된 나이에 늦둥이를 보았던 저희 부부는 육아에 어려움이 참 많습니다. 우선 현안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다른 부모들에 비해 40대 엄마 아빠의 체력이 너무 달린다는 것이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애를 생각하면 나는 70살까지는 일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경제적인 이유에 대한 걱정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사회 생활의 난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우리 아이가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할 무렵에는 상상도 못할 만큼 더 끔찍한 경쟁이 맹위를 떨칠 것 같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IMF를 어설프게나마 겪어 보았던 저 같은 90년대 학번들은 오히려 행복한 편이었습니다. 유례 없는 취업난을 겪으면서 계속해서 자기 존재 가치에 대한 회의와 좌절을 겪어야 하는 90년대생들이 노년 세대 못지 않은 취약 계층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2천년대생들의 미래에는 더 치열하고 더 살벌한 사회 생활과 경제 활동이 기다리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비록 절대적 삶의 질은 올랐다 하더라도 그렇게 우리 사회의 상대적 경제 성공의 난이도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결혼 10주년이 가까워져 오면서 더 늦기 전에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시기에 아내가 했던 말이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범한 집에서 태어났어도 운이 좋아 괜찮다는 학교를 나왔고 괜찮다는 직장을 잡았지만, 우리 자식은 그렇게 되기 어려울 거야. 있는 집 자식들 말고는 이제 제대로 학교 가고 제대로 직장 잡기가 거의 어렵지 않겠어? 우리 자식은 아마 평범하게 사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될 것 같아.”
세습되는 경제 계층이란 하루이틀 이어진 흐름이 아니고, 자본 권력의 독점화가 강화될수록 점점 평범한 사람들은 멀어져 가는 계층 이동 사다리를 보며 비애감을 곱씹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현실에서 아이를 교육함에 있어 인성과 관련된 기본적인 부분 외에도 올바른 경제 가치관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제 머릿속에 자리한 큰 숙제입니다. 숭고하며 아름다운 것이라고 이야기되는 노동의 가치는 물론이거니와 이제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악마처럼 묘사되면서도 모두가 얻고 싶어하는 자본의 가치라는 것에 대해서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게 이끌어 줘야 할지 고민입니다.
노동은 경제 가치 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경제 행위이자 소득 활동의 기본입니다. 우리는 그 노동의 가치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소득을 올리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과연 모두가 노동을 통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요? 노동은 과연 완전무결한 이상적 가치일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기회는 자본에 의해 제공되며, 노동의 가치 또한 자본에 의해 평가를 받습니다. 고용, 급여, 그리고 해고 등 노동 기회 및 가치는 철저히 자본에 의해 판단되고 제공됩니다. 그렇게 노동은 자본에게 종속되어 있습니다.
근로자들의 노동 제공에 의해 수익을 얻는 자본가 집단은 노동이 신성하며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포장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 신성한 노동을 하지 않습니다.
“유한계급(Leisure Class)이란 일정 수준의 자산을 가지고 있어 생계를 위해 노동할 필요가 없는 사회 계급을 말한다.” -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초등학생에게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건물주라고 대답한다는 세태는 모두가 유한계급이 되기를 꿈꾸는 극단화된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오로지 노동의 가치에만 집중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그들의 노동을 필요한 만큼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들에게 필요한 만큼만.
기계의 발달로 노동생산성이 증가하자 자본가들은 필요 없어진 잉여 노동 인력들을 해고하며 노동의 기회를 박탈합니다. 노동자들의 분노는 기계 파괴 운동으로 드러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러다이트 운동 (Luddite Movement)”입니다. 최근에는 ‘구조 조정’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이 노동 기회 박탈의 주요 수단이 되었습니다.
기술 문명은 지속적으로 발달하고 있습니다. 향상된 노동 생산성은 자본가들에게는 효율적 비용 절감을, 근로자들에게는 비극적 노동 기회 상실을 유도하게 됩니다. 더 이상 노동 가치는 합의된 보장 속에서 안정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닙니다.
한편 가속화된 자본주의의 발달은 날이 갈수록 자본 가치의 위력을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몇 년간 열심히 일하며 저축한 사람보다 몇 달 전 빚을 내어 서울 아파트를 산 사람의 수익이 더 높은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 현실에서 과연 우리는 계속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라.”라는 공허해진 가르침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노동의 가치를 유일한 삶의 목표로 여기고 묵묵히 땀방울을 흘려야만 할까요?
이제는 많은 대중들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자본의 가치가 노동의 가치보다 훨씬 더 크고, 쉬우며, 편하다는 것을.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를 부르짖었던 노동 가치의 옹호자들은 자본의 가치에 이미 결과적으로 패배했으며, 수정자본주의는 공산주의의 공격을 적절하게 잘 막아냈습니다. <자본론>을 설파한 이래 오래도록 세계를 떠돌았던 맑스의 유령은 이제 고전 연구 영역에서나 유의미한 수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나는 자본이 없기 때문에 노동할 뿐이지, 자본 수익을 얻는다는 게 노동 수익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즐거우며 행복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상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하게도 노동의 가치가 숭고한 만큼이나 자본의 가치 또한 위대합니다. 비록 그 자본의 가치라는 것이 무수히 많은 이들의 노동력을 빨아먹거나 혹은 다른 이들의 자본을 흡수하여 이루게 될 성과라는 점에서 경쟁을 강화시키고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수도 있는 요소입니다만, 그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반드시 어릴 때부터 가르쳐 줘야 할 중요한 사회적 가치이자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자식에게 경쟁에서 패하는 법보다는 승리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자본을 갖기도 어렵거니와 자본 가치 실현 영역으로의 진입 또한 쉽지 않습니다. 최소한 몇 억의 자본이 있어야 시도할 수 있는 부동산 투자, 정보 불균형과 공매수, 공매도의 횡포가 만연하는 주식 투자 시장은 평범한 서민들에게 너무 높은 진입 장벽을 가진 자본 가치 실현 무대입니다.
그런 보통 사람들, 평범한 근로자들에게 암호화폐 투자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소액으로도 부담없이 시작할 수 있는 낮은 진입 장벽, 높은 변동성 덕에 단기간에 고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매력, 다음 세대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블록체인이라는 유망한 기술 기반이라는 상징성. 게다가 실제로 엄청난 수익을 낸 사람들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며, 듣기만 해도 왠지 젖과 꿀이 흐르는 신천지와 같은 기회의 땅 같은 새로운 투자 시장은 평범한 사람들의 투자 심리를 뒤흔들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열풍을 넘어선 코인 광풍은 시작되었습니다.
2017년 말부터 시작된 한국 정부의 코인 투자 규제안들은 비록 그것이 국민 보호라는 긍정적인 의도에서 기인한 것이라 하더라도 거센 투자자들의 반발을 야기했습니다. 그것은 그 ‘자본의 가치’를 보다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정부가 제한한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반면 정부 입장에서는 아직 무언가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은 투자 영역을 공식적으로 허용하면서 도중에 발생할 무수히 많은 부작용에 대해 도저히 사회적, 정치적 책임을 지기 어려웠겠지요. 그로 인해 아직까지 코인 투자는 합법적으로 인정되지도, 불법적으로 제한되지 않은 채로 애매하게 인정되는, 그저 군수님께서 눈감아 주시는 야시장의 야바위판 정도의 투자 분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rnjsanna/120006804123>
1900년대 초 신문물의 도래와 더불어 많은 사회적 진통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 대해서 치밀하고 재미있게 다룬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라는 책이 있습니다. 뭔가 새로운 기술적, 사회적, 문화적 유입이 발생하면, 사회 지배층에서는 관성에 의해 그것을 튕겨내려 들고, 다른 한편으로 그 매력에 빠진 이들은 본격적인 허용을 요구하는 것이 오랜 인류 역사에서 벌어진 현상들입니다.
기본적으로 사회지배계층이 변화를 싫어하는 이유는 뻔합니다. 급격한 변동으로 인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고 싶지 않으며, 무지렁이 같았던 것들이 사회 변화를 틈타 자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꼴도 보기 싫습니다. 게다가 일부 정치가들의 경우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복무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자본의 가치에 손쉽게 접근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이들이 경제 계층 질서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올 암호화폐 시장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게다가 소수의 선한 의지를 지닌 정치가들의 경우, 변동성이 큰 위험 상황으로부터 먼저 대중을 보호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 또한 불나방처럼 대중이 대박을 노리고 코인 시장에 달려드는 것을 원치 않으며, 이를 사회 병리 현상의 일종으로 간주하기까지 합니다.
결국 제도적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치 권력의 의지는 이미 방향성을 정해 놓고 있었습니다. 경제적 강자를 위한 측이든 약자를 위한 측이든 그들은 현상황에서 코인 시장에 대해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변동성이 크고 제도적 보호 장치가 없는 고위험 시장이므로 투자를 제한해야 한다는 정부의 말이 옳다는 것은 다수가 알고 있습니다. 아무런 위험 없이 달콤한 수익만 보장하는 투자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투자자들은 대부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나도 수저 색깔 좀 바꿔 보겠다는데 왜 정부가 그걸 막느냐?” 하는 정서적 반발감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에 대한 열망 때문입니다. “우리는 평생 이렇게 일만 하다가 죽으라는 거냐?”라는 거센 불만은 자본 가치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절박한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암호화폐 투자는 도박이라며 투자자들을 근엄하게 꾸짖으셨던 장관께서는 부동산 투기로 자산을 증식했다는 의혹이 있으며, 어떤 경영인은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도 재벌 아빠를 둔 덕에 처벌도 피하고 무노동 고임금을 받으며 호의호식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투자는 괜찮고, 세습된 자본을 통해 노력 없이 부를 즐기는 것은 괜찮지만, 암호화폐 시장은 변동성이 크고 안정되지 않았으므로 제한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자본의 가치가 지닌 위력과 그에 따른 현실의 불평등함에 비추어 볼 때 투자자들을 설득시키기 어렵습니다.
고도화된 기술 발달은 사회 구성과 경제 체제의 변화를 가속화할 것입니다. 점점 더 노동의 가치는 감소될 수밖에 없으며, 자본주의 체제가 소멸하지 않는 이상 자본의 가치는 점점 더 강화될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들은 점점 줄어드는 노동 가치의 실현 기회를 메꿀 수 있을 자본 가치의 실현 기회를 마련해야 합니다.
‘탈중앙화’를 통해 기득권층에게 집중되어 있던 정치, 사회, 경제 권력을 분산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장이 블록체인 분야이며, 암호화폐 시장은 그에 기반한 경제 영역입니다. 이는 아직 미성숙한 시장이기에 큰 위험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매력적인 미래 가치 투자의 기회입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라는 현정권의 선거 슬로건을 들었을 때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이론적으로 참 아름답지만, 현실적으로 이루기 불가능한 그 목표가, 이미 세상을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는 40대 아재의 마음을 다시 한번 뒤흔들었습니다. 비록 그것이 이루기 어려운, 아니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라 할지라도, 우리는 사회 정의의 실현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집단에게 결국 정치 권력을 위임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리고 현 정권의 지지층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코인 투자 참여자 집단은 그 ‘평등한 기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는 필요한 만큼의 제도적 규제와 세금 등 의무적 조치를 보완하여 위험을 최소화한 상태로 코인 거래를 합법화 및 제도화 해달라는 요청의 배경입니다. 사회 구성원들은 정말로 자본의 가치 실현 기회가 평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코인 투자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통해서 확인하고 싶은 듯합니다.
반드시 코인 시장만이 자본 가치 실현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모두가 열심히 일만 해도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없다면, 즉 공평하고 안정된 노동 가치의 실현을 보장해 줄 수 없다면, 적절한 개입과 규제를 통해 안전하게 자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은 이들에게 마련해 주는 게 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닐까요?
암호화폐 투자층의 경제적 계층을 따져 보면, 부유층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통계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자본 가치 실현의 기회를 주기도 전에 이 시장까지도 그렇게 기득권들에게 먼저 먹혀 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게다가 이미 초기 채굴업자들과 몇몇 고래들의 놀이판이 되어 버린 지 오래인 코인 시장이 얼마나 평범한 사람들의 자본 이익에 도움이 될 지도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아직까지는 하나의 기회가 될 가능성은 분명히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핵심을 잘 찔러주신 명쾌한 글이신 것 같습니다.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resteem(+fullvote) 합니다.
@ranesuk 입니다. 인명 사전 포스팅에 착오가 있었습니다. 수정되었습니다.
가상화폐 시장이 최소한 공정하고 건전하게 발전되고 업데이트 되지 않는 한 합법화가 되더라도 저희 같은 대부분의 피라미(?) 들은 그다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미 경영진,증인,고래 등의 판이 되어 버린 지금 개선의 노력도 별로 보이지 않구여...
국민신문고올려주세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일반 서민들이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이유는 그것이알고싶다의 인터뷰가 너무 잘 설명해준다고 봅니다
비바님 말씀처럼 정부의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켜서 세금 내도 좋으니까 거래서 리스크 없이 맘편하게 투자하고 싶네요(물론 삼성증권 사태를 보니 이건 뭐... 제도권 안이라도 답이 없어 보이기는 하네요;;)
좋은 글에 감명 받았습니다.
통찰력 있는 글 고맙습니다~
그냥 쉽게 이야기하자면 '돈이 돈을 번다' 가 자본주의의 본질 같습니다. 신자유주의가 고착화가 됨에 따라 남밑에서 일해봤자 절대 승산없다 ...라는 인식만 확산되는것 같아요. 우리자식들세대는 그래도 노동이 아닌 다른방법으로도 잘살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는게 좋을껏 같습니다. 그걸 찾아내는 것이 생각보다는 쉽지 않겠지만요.
팔로 & 보팅 해드리며 앞으로 자주 소통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