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냉동복제가족 - 영원한 행복을 찾아서

in #clone6 years ago

냉동 복제 가족 - 영원한 행복을 찾아서
(지은이: 서울상지초등학교 3학년 임서원. 2017년. 딸의 글)

제1장 눈을 뜨다

나는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나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시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다시 눈을 떴다. 나는 어느 이상한 방에 눕혀 있었다. 이번에는 머릿속이 기억으로 가득했다. 나는 머리가 아팠다.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를 관찰하고 있는 듯 했다. 그 중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나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임서원 씨. 기억이 돌아왔나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모든 것이 어지러웠다.

`나는 왜 여기 있지? 이 사람들은 누구지?’ 하고 내가 생각하자, 그 생각이 내 머리맡에 있는 작은 모니터에 음성과 글로 나타났다.

그 사람들이 다시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저희는 한국ASAN과학연구소에서 왔습니다. 잠시 여기 머물며 건강을 되찾기 바랍니다.”

나는 연구소에 머물며 차츰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나의 하루 일과는 정해진 계획에 따라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을 받았고, 저녁 식사 이후에는 뉴스를 30분 동안 보았다.

나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지금은 서기 2094년인데, 내 기억은 2017년7월까지밖에 없었다.

‘내 생일은 2008년 5월 5일인데, 지금이 2094년이면 내 나이가 87살이란 말인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날 나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양화대교 아래서 자연 미라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미라에 대하여 더 조사해봐야겠지만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약 100년 정도 된 것 같다고 합니다.”

나는 알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제2장 동생과의 만남

그 미라는 내가 있는 연구소로 왔다. 연구소에서는 미라의 장기에서 DNA를 추출해 복제 인간을 만들었다. 그 복제 인간은 죽었던 그 나이 그대로 만들어졌다.

6개월 후 나는 연구소에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우연히 그 복제인간을 만나게 되었다.

“서준아!”

“누나!”

우리는 첫눈에 서로를 알아봤다.

“아, 이게 어떻게 된 거니? 네가 복제 인간이라니!”

나는 온몸을 떨며 소리치듯 말했다.

“누나, 나도 연구원들이 말하는 걸 들었는데 누나가 뼈에서 나온 DNA를 사용해 만든 복제인간이래!”

“정말? 내가 복제 인간이라니! 말도 안돼……”

그날 저녁 우리는 연구소장님과 면담을 했다. 연구소장님은 우리의 몸을 복제하고 저장되었던 기억을 머리에 심어 주었다고 했다. 그 기억은 2017년 7월 까지 저장되어 있었던 것인데, 내 아버지께서 정기적으로 저장해 두셨던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면담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해도 전혀 되지 않았다.

제3장 다시 만난 가족

이듬해 봄, 연구소장님이 우리 남매를 불렀다. 그곳에는 우리 부모님이 계셨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

“아빠, 엄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전 두 분께서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지금이 2095년이니까…”

나는 너무 놀랍고 떨려서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는 우리를 끌어안으시며 말씀하셨다.

“너희를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 기쁘구나. 우리는 너희를 사고로 잃은 후 너무 슬퍼서 냉동 인간이 되어 잠들어 있었단다. 그리고 너희를 찾게 되면 복제하고 우리를 깨워 달라고 ASAN 연구소에 요청했지. 그리고 아빠는 사고로 인해 몸을 많이 다치셔서 뇌만 냉동하셨다가 해동하신 후에 온몸을 나노생체로봇으로 만드셨단다.”

그래서 다시 만난 우리는 얼마 후,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갔다.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제4장 아빠와의 작별

우리 가족은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 처음에는 가벼운 감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점점 상태가 악화되었다. 우리는 그저 로봇에 문제가 있으니 연구원들이 조금만 손보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아빠는 자주 우울해 하셨다. 우리는 많이 걱정했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연구소장님께 아빠의 상태를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연구소장님이 너무 바쁘셔서 다음 주로 미뤘다.

아빠가 검사를 받기로 한지 바로 전날, 아빠는 피곤하시다면서 일찍 잠드셨다. (연구소에서는 잠드는 시간을 저녁 9시 30분으로 정해 주었는데, 아빠는 8시도 되기 전에 잠드신 것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아빠를 깨웠다. 아니, 깨우려고 노력했다.

몇 십 분이 지나도 아빠는 깨어나시지 않았다. 우리가 온갖 방법을 써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연구소장님이 직접 찾아왔다. 그래도 아빠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허허, 이상한 일이군요.”

연구소장님이 말했다.

“그러게요. 어제 일찍 잠드셨는데 10시가 되도록 안 일어나시다니....”

엄마도 거들었다.

어느새 우리는 모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연구소장님이 연구원들을 불러서 연구원들도 도왔다.

12시 23분. 역시나 아빠는 깨어나시지 않았다.

한 연구원이 우리 방으로 측정기 같은 것을 들고 들어왔다. 그 연구원은 그것을 아빠의 등에 대보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 돌아가셨어요.”

이럴 수가! 모두가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게… 정말인가요?”

나는 울면서 물었다.

연구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눈물 방울들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5장 영원한 행복은 어디에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고 몇 주가 지났다. 연구원들이 사망 원인을 알아보고, 엄마와 서준이가 슬퍼하는 동안, 나는 어느 박사와 연락을 했다. KOREA MEMORY SERVER에서 일하고 있는 앤더슨 박사라는 미국인 과학자였다. 나는 그에게 아빠의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주고 아빠의 기억을 받아왔다.

나는 아빠의 저장된 기억을 꼼꼼히 살펴 보았다. 물론 누군가의 기억을 보는 것은 불법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빠의 기억은 기억저장이 가능하게 됐던 해인 내가 태어난 2008년 5월부터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2017년 11월에서 2094년 10월까지는 기억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2017년 8월에서 2094년 5월까지는 기억이 없다.

내가 아빠의 2017년 8월 4일 기억을 보고 있을 때였다. 우리 가족은 휴가에서 돌아오는 길에 양화대교 위를 지나고 있었다. 운전을 하던 아빠는 잠시 핸드폰을 보던 중 운전 부주의로 난간을 들이 받았다.

“끼이익 쾅!!!”

사고가 났다. 우리밖에 없는데 말이다. 내가 강으로 떨어졌다. 서준이도 저 멀리 강 밑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엄마와 아빠는 우릴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곧 엄마와 아빠는 구조됐다.

“이런 일이!”

나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나는 서준이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서준이도 “이럴 수가!”라고 말하더니 엄마께 알려드렸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엄마는 이때 차에서 자고 있어서 차의 부작용 때문에 사고가 났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우리는 그날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잠도 겨우 들었고 나는 아빠 꿈을 꿨다.

다음날 아침에도 말없이 식사를 했다.

우리는 그렇게 슬프게 몇 달을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제안을 했다. 가족 여행을 가자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주일 동안 보라카이로 여행을 갔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신이 나 있었다. 비록 겨울이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물론 아빠가 없어서 허전했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여행을 즐겼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돌아왔다. 여행으로 기분 전환이 된 우리는 잘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우리가 연구소에서 운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 아빠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엄마에게 아빠가 보고 싶다고 말하니 엄마와 서준이도 방금 아빠 생각이 났다고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날 이후로 계속, 한 순간도 빠짐없이 아빠 생각이 났다.

그리고 몇 주 후, 엄마가 병에 걸리셨다. 나는 엄마를 간호하고 위로해 드렸다. 엄마는 내가 엄마한테만 가면 아빠 생각이 난다고 하셨다.

나와 서준이는 엄마께 매일 연구소에서 준 약을 드렸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자, 우리는 점점 걱정되는 것과 동시에 아빠가 보고 싶었다. 우리는 엄마를 간호하기도 지쳤고 엄마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엄마와 서준이와 함께 누워 있었다.

엄마가 거의 잠들었을 때 내가 말했다.

“과학의 힘이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줄 수는 있어도 행복하게 하지는 못하는 것인가…”

엄마와 서준이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