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매달려 있는 모습이 가장 많을 것이다. 이 장면은 고대사회에서 가장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사형집행이었다. 십자가의 형벌은 치명적인 사망이 되지 않기에 아주 서서히 죽음으로 몰고 가기 때문에 사형수들에게는 최악의 공포이기도 했다. 예수님은 몇 시간만이 사망했지만, 대다수의 사형수들은 며칠이나 일주일 이상 살아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무릎을 깨뜨려서 과도하게 혈액을 흘리게 함으로 일찍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게 위정자들의 자비로운 행위로 여겨졌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수혜(?)를 입기 전에 돌아가셨음은 여러분도 잘 아는 사실이다. 십자가의 처형은 악명이 높은 것은 끔찍한 고통을 수반하는 것 뿐 아니다. 당시 권력자들이 반항하거나 모반을 일으키는 백성들에게 위협과 두려움을 주는 공포정치의 수단으로 삼아서,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처형을 하곤 했다. 그래서 수형자를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지들은 사망한 이후에도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상징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여성들은 목걸이나 반지로 만들어 엑세사리로 착용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놀라운 혜택과 축복을 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하고 싶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1~7)
위의 이사야의 글은 너무도 유명해서 설명이 따로 필요 없다. 그래서 당신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셨으므로 평화와 치유를 누리고 계신가? 이 사실을 철썩 같이 믿고 교회마당을 부지런히 밟고 있지만, 여전히 영혼은 건조하고 냉랭하며 삶은 고단하고 팍팍하다. 영혼의 쉼을 얻지 못하고 삶이 피곤할 뿐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이가 들수록 아픈 데는 더 아프고, 새로운 질병들이 줄을 서서 들어오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자신은 그럭저럭 버티지만, 부모나 자녀 중에 정신질환이나 고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음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의 형벌을 받으므로 우리의 영혼이 자유오워지고 삶이 평화로우며 정신과 육체가 치유되어 건강을 누리지 못하는 걸까?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종교적인 사기꾼이 지어낸 가짜 이야기이거나, 당신이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의 수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당신의 곤혹스러운 표정에서,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신앙생활의 현주소가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하고 싶다.
- 전쟁과 질병을 제공하는 원인을 알아야 한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6~19)
위의 구절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아담과 그 후예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내용이다. 생존하고 삶을 이어가는 데 엄청난 고통이 있을 거라는 끔찍한 말씀이다. 여기에 방점을 찍는 저주가 바로 육체의 사망을 선포하는 내용이다. 사망은 어떤 통로로부터 오는가? 사고로 죽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나이가 들고 늙어감에 따라 쇠약해져서 고질병과 성인병으로 인해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므로 삶이 전쟁터이고 육체가 고질병의 온상이 되는 이유는 바로 아담의 범죄로 인해 온 세상과 인류에게 죄가 들어와서 관영하게 되었음이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59:1,2)
지옥은 유황불이 활활 타오르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과 분리된 곳이 바로 지옥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면 바로 지옥을 경험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옥은 마음이 전쟁터이고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과 공포, 두려움과 불안이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마음에 평화가 아니라 걱정과 두려움과 불안으로 채워지고, 건강이 아니라 정신질환과 고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교인들은 자신들이 왜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느냐고 반문하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영접기도행위를 수도 없이 하고, 교회의 예배의식을 성실하게 참석하고,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 영접기도행위와 예배의식에 참석하며 교회 봉사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함께 하는 증거라고 어디 말했는가?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다.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교단교리를 가르치는 목사들의 말일 뿐이다. 당신이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고 교회직분이 드높다고 하더라도, 당신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마음의 전쟁과 육체의 질병이 사라지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동안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던 교회의 가르침으로 인해, 필자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5:2)
중풍병은 성인병으로 뇌졸중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중풍병의 원인이 죄 때문이라고 콕 집어서 말씀하고 계시다. 그렇다면 어디 성인병이 중풍병 뿐인가? 암, 심장질환, 고혈압, 당뇨 등, 수도 없이 많다. 성인병은 누구나 성인이 되면 면역력이 약해져서 생기는 병일뿐이다. 그래서 목사와 장로, 권사와 집사는 말할 것도 없이, 믿음의 여부와 상관없이 생기는 질병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거짓말을 했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성인병 뿐 아니라, 우리네 교회에서 치유의 능력이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정신질환과 고질병에 걸린 교인들에게 용하다는 의사를 소개해주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무능하고 무기력한 모습이 우리네 교회의 차가운 현실이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당신의 마음에 전쟁이 사라지지 않으며 고질병이 낫지 않은 이유는 죄의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회개하고 죄와 피터지게 싸워야 한다.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하지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공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곧 그 안에서 죽으리라(겔33:12,13)
위의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인정하는 사람이라도, 범죄 하는 날에는 의로운 행위가 기억되지 않고 죄 때문에 지옥에 갈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런데 과거에 행했던 회개기도로,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도 용서받았다면서 재탕, 삼탕 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지 않은가? 성경 어디에 그런 말씀이 있는가? 그러나 악한 목회자들은 자의적으로 해석한 성경구절을 들이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고 있으니 섬뜩한 일이다. 그들의 말이 진실이라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을 리가 없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눅3:7~9)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사역의 첫마디는 동일하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다. 그러나 입만 달싹이는 회개가 전부가 아니라고 잘라 말씀하고 있다. 세례요한은 회개의 열매가 없는 말로만 때우는 회개로는 지옥 불에 던져지는 재앙을 피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회개의 열매가 무엇인가? 죄에서 돌이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열매가 없이 잎만 무성한 나무를 잘라버리겠다고 선포한 말씀과 동일한 논조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행3:19~21)
위의 구절은 삼천 명의 유대인들이 초대교회에 입교했을 때 베드로가 행한 설교의 내용의 일부이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고 선포하면서, 그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콕 집어서 말하고 있다. 죄에서 돌이키지 않는 회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회개하는 것은 죄를 미워하고 죄를 끊어내고 죄와 싸우겠다는 믿음의 행위가 아닌가? 그러나 우리네 교인들은 입만 달싹이는 회개행위로, 자신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면죄부로 착각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히12:4)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3:21)
당신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기도를 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은 예수님을 신랑으로 여기고 결혼식을 올린 신부인 셈이다. 그러나 신부가 밤에는 화장을 짙게 하고 애인을 만나서 잠자리를 같이 하고 새벽에 돌아온다면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도 자신은 예수님과 결혼식을 올렸으므로, 천국에 들어간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면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인가? 이 얘기는 성령께서 울 영성학교 교수님에게 직접 하신 말씀이다. 이러한 일이 우리네 교회에 만연한 현상이다. 예수님이 싫어하는 죄를 밥 먹듯이 짓고 있으면서 회개할 생각도 없이 살아가면서, 과거의 회개기도로 자신들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착각하고 있으니 섬뜩한 일이다.
-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6:53~57)
아시다시피, 예수님의 살은 말씀이고 피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다. 그렇다면 인자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표현은 무엇인가? 설교를 많이 듣고 성경말씀을 읽어서 머리에 저장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성령의 조명하심을 받아 깨달음으로 가슴에 저장하여 삶에 적용하여야 하는 것이다. 또한 피를 마신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셨다는 것을 지식으로 받아들이거나 관념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피의 공로를 의지하여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용서함을 받고, 날마다 죄와 싸우고 죄를 부추기는 악한 영과 싸워 승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그래서 매일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람은,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심으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서 성경을 읽을 때 말씀이 깨달음으로 가슴으로 내려오고, 예수피의 공로를 의지하며 죄와 싸우고 악한 영과 싸워 승리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는 종교적인 예배의식에 참석하여 설교를 듣거나 교회봉사를 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1~6)
이처럼 당신이 평화와 치유를 누리려면 영의 일만을 생각하고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나 육체를 가진 사람이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의 사람이 되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 평화와 기쁨과 자유를 누리며 살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관념적인 자기 확신의 믿음을 성경적인 믿음으로 착각하고, 종교의식에 참석하고 신앙행위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믿음을 확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의 영혼과 삶에 평화가 가득차고, 정신질환과 고질병이 치유되어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며 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까지의 믿음이나 신앙생활이 형식적이고 비본질적인 종교행위에 불과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회개하고 돌이켜서 회개의 열매를 얻으며 매일처럼 죄와 피터지게 싸워 승리하는 삶으로 천국의 백성임을 증명해보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평화를 누리며 치유의 축복의 수혜자가 되어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신 보혈의 공로를 날마다 누리는 천국백성이 되는 것이다.
크리스천 영성학교,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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