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현재 출간 준비 중인 에세이 원고들 중 일부를 스팀잇에 연재할 계획입니다.(매주 목요일 연재입니다.) 제가 11년째 집사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는 07년생 고양이 '뚜이'의 이야기입니다. -뚜이는 아마 자각하지 못하겠지만- 뚜이가 더 나이가 많아지고 기력이 쇠해지기 전에 뚜이와의 추억이 담긴 《사진 에세이집》 한권을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물론 지금껏 같이 지내온 시간, 딱 그만큼 더 뚜이가 저와 함께 있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고요.
가을이 오면 그 가을이 떠오르겠지
“너를 처음 만난 그해 가을의 추억”
9월은 가을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여름날의 열기가 정점에서 사뭇 사그라지고, 느껴질 듯 말 듯 서늘한 바람이 감질나게 불기 시작하는 계절. 더위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제 더 이상은 들썩임도 들끓음도 없다는 생각 때문에 차분히 아쉬워지는 계절. 아직은 파릇한 초록빛 나뭇잎들을 보면서도 벌써부터 마음속에서는 울긋불긋 단풍이 그려지고, 잠깐이기는 하지만 일 년 중 가장 은혜롭고 세상 편한 날씨를 즐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에 묘하게 들뜨는 계절.
뚜이를 처음 만난 날은 바로 그러한 계절이 갓 기지개를 켜려던 길목, 9월 2일, 가을의 문턱에서였다. 11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지만 9월만 되면 라디오 프로그램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을 노래들을 흩뿌린다. 뚜이를 만나러 가던 길에도 차 안 스피커에서는 <가을이 오면>이 흘러나오던 중이었다.
주변이 밭과 산으로 가득한 논두렁식 차도였고 날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다. 물 맑고 공기 깨끗한 안산 변두리의 자연에서 대가족과 유아기를 보내서였을까. 이제까지를 돌이켜보니 뚜이는 그 흔한 잔병치레 한번 제대로 겪어본 적이 없었다. 목욕을 하는 것이 싫어서, 혹은 병원에 가는 것이 싫어서 용케 눈치 빠르게도 꾀병을 부린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앓았던 적이 전무했다. 제 나름대로 효도라면 효도를 한 것일까.
입양을 할 때 자기가 살던 집을 떠나는 순간 고양이들은 대개 그렇게도 울거나 칭얼댄다고 한다. 아마도 고양이가 영역 동물인지라 자기가 몸담았던 터를 떠나는 것이 불안할 테다. 그러나 뚜이는 신기하게도 집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번을 울지 않았다. 마치 안산이 타지였고, 당시 내 집이 제 집인 양 뚜이의 표정이나 태도 자체는 귀가하는 고양이의 모습 그 자체였다. 차 안에서도 잠시간을 가만히 있지 않고 걸터듬더니, 못내 지쳤는지 뒷 유리창 근처에 드러누워 잠을 자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이때 뚜이의 건방진 성격을 눈치 챘어야 했다!)
반려묘는 자신의 집사를 스스로 고른다는 속설이 있다. 닝겐이 자신의 집을 찾아왔을 때 닝겐에게 안긴다거나, 애교를 부린다거나 하는 행동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이 같은 기준에 의하면 뚜이는 나와 연(緣)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뚜이가 처음 보인 행동이라고는 내 머리카락을 향해 손찌검 장난을 쳤던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11년 동안 말 없고 탈 없이 뚜이와 지내본 결과, 뚜이는 뚜이 나름의 방식으로 집사와 닝겐을 골랐던 것이 아닐까 싶다. 고향을 떠나는 와중인데도 흡사 귀향을 하는 이처럼 시건방지다 싶을 정도로 편한 모습을 보인 뚜이의 모습은 본인만의 화법으로 우리가 연(緣)이었음을 알리고픈 행위였을지 모른다.
그렇게 차 속에서 가을볕을 쬐며 뚜이는 영원히 나의 반려묘가 되었다. 뚜이에게 뚜이란 이름을 붙여준 때도 바로 이 날, 서울로 오는 차 안에서였다. 기온 상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었지만 세상과 사람들은 이미 가을로 마음 피서를 떠난 그런 시절이었다. 6월 19일, 여름에 태어난 뚜이는 유아기를 뜨겁게 영글고 여름이 정상에서 내려올 무렵 나와 함께 성묘가 되는 길을 새롭게 여물어가기 시작했다.
너를 만나려고 나는 지금껏 뜨거운 여름을 보냈나보다. 나를 만나려고 너는 맹렬한 여름을 지냈나보다. 매년 9월 2일, 가을의 시작점 언저리만 되면 나는 너를 2007년의 그날처럼 추억할 것이다. 선선한 바람에 하얗고 보드란 너의 귀여운 털들이 산들거리며 나를 향해 웃고 있는 모습, 치명적인 기억 그대로.
뚜이라는 이름 어떻게 짓게되셧는지 궁금하네요 털이 넘나 이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