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강] - 오정희
외로움과 고독의 뜻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그저, 외로움은 타인과 관계한 것이고, 고독이란 내 안에서 오는 것이라는 막연한 정의밖에 내리지 못하는 내 언어능력에 개탄한다.
외롭다고 느낄 때, 나는 곧잘 주변인을 떠올리곤 한다. 가족, 연인, 그리고 친구. 고독하다 느낄 때는 나 혼자만 그 자리에 둔다. 고독은 그만큼 외로움의 저 쪽 끝에 서 있는, 친구 하나 없는 학창 시절의 이름만 알고 지냈던 그 아이의 그것과 괘를 같이 한다.
한국 젊은 작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가장 닮고 싶어하는 글을 쓴다는 선배 작가. 나 역시 그녀에 대한 것은 알지 못한 채로 그녀의 첫 소설집 [불의 강]을 집어들었다.
너무도 유명하고 훌륭한 작가가 많은데 나는 그동안 너무나 독서편식을 해 왔던 것 같다. 김영하가 좋으면 김영하만 읽고, 이승우가 좋으면 이승우만 읽고, 가장 위험한 하루키 상에게 빠져 그의 책만 주구장창 읽던 내 20대가 떠오른다.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조금 더 시야를 넓히지 못했던 것이 아쉽기만 하다.
오정희의 첫 소설집, [불의 강]에 등장하는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 지점에서 행동하고 발화하는 사람들이다. 낮잠을 자고난 아이가, 설잠을 자고난 후의 그 부족함을 매우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듯, 그들의 삶에는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못해 울어버리는 아이의, 낮고 짙고 어두운 고독이 드리워져있다.
그리고 그들은, 외롭다. 고독하다고 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그 흔한 인간적인 감정을, 고독이라는 단어를 통해 거둬 들이지만, 고독하기 이전에 그들은 외롭다. 그리고 시간의, 그들이 떠나보내는 시간 속에 있을 법한 관념에의 철학에 대해 굳이 논하지도 않는다. 그리 함으로써 나타나는 그들의 행위는 위태롭다. 모든 에피소드가 그러하지만, <적요> 속의 그는 위태롭다 못해 혐오스럽기 까지 하다. 그 안에 웅크린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의 싸움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옹졸함과 치졸함이다. 매일 오는 도우미를 통해서만 외부와 접촉하며 삶을 영위하던 그가, 더 이상 오지 않을 도우미를 마지막으로 보내고 난 후 밖으로 나가 사탕 한 줌으로 아이들을 혹하게 하다가, 눈에 설은 가난한 동네에 사는 아이를 유인해서 그가 속한 영역으로 데리고 온다. 그가 가진 고독은, 이미 늙고 병든 몸으로는 받아내기 힘든 것이었는지, 그 작은 아이의 호흡에 기생하다가, 어둠에 겁먹은 아이를 안심시키는 말들로, 고독한 그의 영역에 붙들어 두기 위한 타락한 친절을 베풀며 스멀스멀 기어 다니다가, 그가 어쩔 수 없이 소비해야 하는 하루의 모든 에너지를 소비하게 하는 것으로 그날의 임무를 다했다.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 시기에,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타인일까 우리 자신의 모습일까.
<관계>는 또 어떠한가. 죽은 아들을 공유하며 같은 공간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시아버지와 젊은 며느리... 이제는 그러할 것 없다, 너의 인생을 살아라... 며 마지막으로 시아버지의 역할을 다했다 생각했지만, 알 수 없는 며느리의 고집으로 생활을 공유하게 된, 늙은이... 용변조차 혼자 힘으로 할 수 없지만, 놀랍게도 그의 의식은 여전히 멀쩡하다. 물리적으로 다다를 수 없는 그의 상념은, 정신으로 만개한다. 그리고 닫혀진 며느리의 문을 작동하지 않는 육체의 힘으로 끊임없이 열고자 힘쓰는 그는, 외로운가, 혹은 고독한가. 아니면 다른 우리 억만가지의 감정의 회로에 돌출된 기이한 모습의 이면인가.
<관계>는 이 소설집 중 가장 끔찍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가장 좋았던 소설을 고르라면 <관계>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담긴 내용과 인물은 혐오스럽지만, 작가가 써내려가는 글은 처연하고 서늘하지만, 그 시간과 그 마음과 그 사람을, 오정희 작가보다 더 잘 묘사할 수 있는 작가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모든 소설들이 다 그러하지만,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표현과 서사가 그의 글을 두 번 세 번 곱씹어 읽게 만든다.
놀랍게도 이 글은 오정희 작가의 30대에 씌여졌다. 우리 인생의 가장 황금기라 할 수 있고, 나무의 빈 터를 채우기에 가장 합당한 그 때에 이다지도 우울하고 잔인하리만치 사실적인 글을 썼다니. 그녀의 삶은 도대체 어떠했을까. 모든 글이 작가의 자전적인 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다보면, ‘사실’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 ‘감성’에 있어서는 작가 자신으로부터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이 소설집에 실린 모든 작품들에 일관되게 흐르는 감정선은 너무나도 특이하고 진하고 어두워서 오정희 라는 작가에게 인간적인 호기심마저 든다.
줄을 긋다 긋다, 아예 모든 글이 다 줄 그을 만큼 독보적이라 여기고 줄긋기를 그만두었다. 예전, 이동진 작가가 필사했다던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따라 필사 했던 적이 있었다. 이 글을 몽땅 다 필사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 도대체, 무엇이 이 작가에게 이런 글을 쓰게 했을까.
오정희 작가가 이야기하는 ‘그들’의 고독은 우리가 가 닿기에는 힘든 구석이 있다. 다소 기형적이고 불구의 고독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나가며,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제도권에 갇혀 있기 때문에... 그 제도적인 힘은 우리가 살아나가는 중심에서 결코 멀어질 수 없기에, 우리는 자연스레 그것들을 받아들이거나 멀리 한다. 그 제도권 안에 있는 우리의 의식이 오정희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 즈음에 있는 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이 이 책의 호불호를 가를 것이다.
솔직히 어렵다... [번제], [산조], [직녀] 이 세 작품은 스토리의 연결이 굉장히 불편하다. 물론 이야기성을 강조한 작품들이 아니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라는 것이 열쇠이겠지만, 그 의식의 흐름과 끊김, 이야기의 영속성과 비영속성의 경계를 왔다갔다 하다보면 느닷없이 끝나버리는...
문장들이 독특하고, 깊고, 지나치게 서늘하거나 무겁고, 끝을 알 수 없을 듯 깊다가, 심지어는 아름답다. 앞으로 이 작가의 글들을 또 읽게 될 것 같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직은 내가 이 작가의 진정한 팬이 되어서 오정희 작가 이야기를 또 한보따리 늘어놓게 될지는. 나는 한 번 좋아하면 그냥 좋아하고 오래 좋아하는 의리있는 독자니까.
북키퍼님 당분간 오정희 작가의 작품을 찾아 헤매이실 듯하네요!
저도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아주 작은 글까지도 모두 찾아 읽고 좋아하고, 간직하곤 해요...
어떤 작가인지 궁금해집니다!
둥이 어머님. 스팀잇 마당발임. ㅋㅋㅋ 어디가나 계셔... ㅋㅋ
카비님은 보팅만 하고 다니는 곳이 많죠?!
지켜보고 있었음!! ㅎㅎ
ㅎㅎㅎ 두분다 서로를 지켜보고 계시는군요
저도 궁금해서 계속 읽어보고싶어요
글을 너무 잘쓰면, 답글을 달기가 어려워요. 좀 살살하세요. ^^ 한국문학도 꽤나 기웃거렸는데, 오정희 작가란 분은 처음 알았습니다. 이 포스팅을 읽어보니 뭔가 금기되고 숨겨진 감정의 이면을 건드리는 분이 아닐까... 싶어요. 포스팅을 읽으면서 셜리 잭슨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요? ^^ 좋은 밤 되세요.
셜리잭슨은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오 무진기행에 비견하시는 걸 보니 명작이군요
오~정희 불의 강 찾아보겟습니다. 감사 ^^
명작? 이라기 보다는... 굉장히 충격적이고 처음보는 감상이 있었습니다
불의강은 못찾고 몇권 읽어보겠습니다
와!! 감사해요 raah님!
글이 잘 벼린 칼 같아요... 뭔가 감상을 더하기 힘든 느낌? 오정희작가 책은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
잘 벼린 칼이라는 말이 두번이나 나오네요!! @afinesword 님 소환합니다. 우리집에도 좀 와주셈 ㅋ
큭.. 댓글은 제가 썼는데 소환은 @afinesword님인가요...ㅋ
하하 잘 벼린 칼을 소환한 것이지요. Travelwalker 님 덕분에 제가 애정하는 분을 불러봐여. Travelwalker님 소개하는 중임**
그분 닉넴이 잘 벼린 칼이라는 뜻이라네요. 장난삼아 불러봤습니다
ㅎㅎㅎ 재미삼아 우스게 소리 한겁니다.. 소개도 해주시고 감사합니다 ^^ 활기찬 하루 되세요~
북키퍼님 근데 이 책들은 예전에 읽으셨던 건지 아니면 필리핀에서 한국서적을 구하실 수 있는건지 급 궁금해지네요...ㅎㅎ
덕분에 읽고 싶은 책 목록에 한권 더 추가하고 갑니다! 감사해요ㅎ
@홍보해
홍보해주셔 감사해요 발레리나님^^ 정기적으로 배로 오고 있어요^^ 신랑 출장 갈 때마다 한두권 갖고 오구요. 첨에는 여기서 원서를 읽었는데... 한글에 대한 갈급함이 있어서 한국 작가님 글을 읽고 있어요.불의 강은 최근에 읽었어요. 다른 책들은 거의 예전에 읽고 메모해놓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당 ^^
아주 끌림이 많은 책이네요. 북키퍼님 옆집에 살았어야 했는데...아쉽!
나도 그 옆집에 가고싶어여. 필리핀 아닌 영쿡 ㅋㅋ
저도 좋아하는 작가 책만 읽는 편식쟁이랍니다 ㅠㅠ
오정희 작가책은 중국인거리와 유년의 뜰만 읽어봤는데
불의 강도 궁금해지네요! :D 눈에 띄는대로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오정희 작가를 아시는군요. 저는 1도 관심도 없다가 최은영 작가가 제일 존경하는 선배라 해서 급 관심가지고 겨우 하나 읽었어요. 중국인거리, 유년의 뜰 좋은가요? 저도 읽어보려구요
스팀잇에서 책 리뷰를 가끔 읽긴 하지만 '읽고 싶다!'는 강한 느낌을 준 책은 처음입니다.
저도 책을 읽고 @bookkeeper님처럼 정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머릿속만 복잡하고 정리가 안 되서 이런 일목요연한 정리가 안 돼요.ㅠㅠ
지난 글들도 틈틈이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네요. 조금씩 읽겠습니다~^^
이 문장을 보고 잠깐 생각을 해봤어요.
'타인일까? 자신일까?'
그러다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 이렇게 생각했는데,
'너무 작위적인데!'라는 반론이 바로 나오네요.ㅋ
결론은 '자신의 모습'일 것 같습니다~ㅎ
아ㅜ답글 감사합니다. 제 글을 읽고 읽고싶어 지셨다니 너무 감사한 말이네요 호
감정을 세세하게 묘사하고다루는 작가님들 볼때마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대체 어느정도 깊이에 있는 심리를 들여다봐야 그런 감성을 담아낼수 있을까 싶네요 ^^
맞아요. 작가님들은 어쩜 그런지.. 부러워요ㅜㅜ
글을 넘 잘쓰세요
부럽
부끄 ㅎ
불의강... '줄을 긋다 긋다, 아예 모든 글이 줄 그을 만큼 독보적' 이란 말에 꼭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음번에 하고 있는 독서모임에 추천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독서모임 중이시군요. 근데 싫어하실거 같아요 회원들이 ㅋ
그러게 삶이어땠나 엿볼수있겠어요
경험에서나오는게
다른사람의마음도 움직일수있으니까
읽는 내내 그런 느낌이었어요. ㅎㅎ
아주 오래전 조정래님의 아리랑을 보다가 책을 벽에 집어 던졌던 생각이 납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그리고 그 책을 보지 않았죠. 이 책은 꼭 그럴거 같네요.. 시간이 그만큼 지났으니 다시 보고싶어 집니다..ㅎㅎ
ㅋㅋㅋ 많이 집어던졌어요 ㅋㅋ 스티밋 시작하고 책을 많이 못읽어요. 여기 글이 너무 잼이있어서요 ㅎㅎ 그런데다ㅜ책이 너무 어둡고 어려우니 던졌다가 다시 보고 다시 보고...
저도 글 잘쓰고 싶네요 독서도 안하는 주제에
독서가 음식이라면 전 영양실조
편식이 가능하시다니 ㅋ
편식만 너무 해도 영양실조만큼 안좋아여^^ 방문 감사합니다**
뭔가 엄청난 책을 발견한 기분인데요?? 키퍼님이 이렇게 감탄을 하실 정도면. :)
다음 책으로 꼭 읽어보겠습니다. +_+
근데 싫어하실지도 몰라요ㅜ 저는 이야기나 인물 등등의 컨텐츠는 끔찍하게 싫었지만 그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이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고 깊이에 감탄했지요.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창조해내고 독자에게 묵직하게 다가가게 만든 글의 힘에 감동 막은거구요. 지금은 쓰레기로 판명됐지만, 약간 김기덕 스러운 분위기? 그 반대쪽의 좋은 의미의 ㅎㅎ
저도 몇년 전 하루키에 빠져서 그의 책을 참 많이 읽었었더랬습니다.
어떤 작가가 마음에 들어 그 작가의 책을 다 찾아 읽는 것도 좋은 독서 습관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뭐 그전에 다독이나 정독의 과정을 거친 사람이어야겠지만요..
오정희의 책도 많이 읽으시고 북리뷰 또 올려주세요^^
gghite님 감사해요 와주셔서. 하루키를 좋아하셨다니요!!! 급 친근감이 듭니다. 오정희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많이 읽게 될지는^^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한국에 와 있어 다행이예요 ㅎ 서점에 한 번 가봐야겠네요..
싫으실지도 몰라요ㅜㅜ. 너~무 어두워요
일단 오정희라는 작가를 하나 알아간다고 생각해야겠네요 저는 잘 모르는 작가라...... 30대때 지나치게 사실적인 문구를 사용했다라.... 궁금해집니다
저도 잘 모르는 작가예요. 이번에 읽은 책이 충격적이었어요 ㅎ
오늘도 호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