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페미니스트> 이 시대의 사랑

in #book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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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한영교의 ‘두 번째 페미니스트’, 박정훈의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그리고 위근우의 ‘다른게 아니라 틀린겁니다’ 세 권의 공통점은 바로 연대기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뒤틀리고 불편한 침묵을 깨고, 같은 남성들의 밀어내는 시선을 거쳐왔을 연대기.


 ‘두번째 페미니스트’는 2019년에 출판 된, 이 시대의 사랑에 대한 남성 페미니스트의 열렬한 응답의 기록이다. (조한혜정 교수, 김현 시인 추천) 이성애자-비장애인-남성으로서, 남성들 속에서 느껴온 경쟁, 살기, 여성혐오 등에 근원적인 물음표를 붙이며 오롯한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애인’으로서, 가정의 ‘집사람’으로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세상은 평등해야 한다고 외치는 ‘페미니스트’로서 살아온 이야기.


 이 책은 넓은 인문학의 바다에 빠져본 사람이 내게-그것도 친절히-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가는 경험을 한자 한자 가르쳐주는 듯 했다. 올해 초반 이 책을 읽었을때, 마지막 한장을 남겨두고 다시 한번 완독을 한 후에야 글을 쓰리라 다짐했다. 책을 깊이 소화한 후에야 책에 대한 감상을 꺼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 문장 한 문장 줄을 치고 꾹꾹 눈에 눌러 담느라 책을 완독하는데 평소보다 두배가 걸렸다. 중간에 인용하는 소설, 시인들의 문장들 그리고 평소 내가 소화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매끄럽게 다듬어 적어놓았기에,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언어가 세계의 그림이라고 정의한 지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경계는 내 세계의 경계를 의미한다”고 진술했다. 기존에 습관적으로 써오던 언어의 용법을 바꾸면 내 언어의 경계가 달라지고, 내 세계의 경계도 달라진다.



 책 중간에는 시인인 저자의 시, 일상 고찰, 짧은 번호일기 등이 나열되어 있는데, 순간을 붙잡아 그것을 글로 빚어낸 능력과 타이밍을 읽으며 짧지만 강력한 한 문장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은 언어다 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나의 미세한 언어들을 점검했다. 처음부터 말을 다시 배우는 것처럼, 버릇처럼 쓰고 있던 말을 고쳐나갔다. 남녀라는 말을 여남으로 순서를 바꿔 부르는 연습을 했다. 당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다른 적절한 말이 없을까” 였다. 익숙했던 문장 구조를 바꾸어 부르는 훈련을 했다. 상대방의 얼굴과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금지했다. 가끔 누가 너무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오면 칭찬을 하고 싶어 입이 터질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여성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뒤로 여성들과 두루두루 우정을 나누기 시작했다. 친구, 누나, 이모, 할머니 할 것 없이. 세상엔 참 좋은 친구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릇과 여자는 밖으로 내돌리면 금이 간단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가 똑똑하면 팔자가 드세다,.. 여성을 비하하는 셀 수 없는 속담부터 일상속에 스며든 남성중심적인 단어들과 여성혐오가 만연한 개념들은 우리 곁에 공기처럼 머물고 있다. 의식적으로 쓰지 않거나 바꾼다면 최소한 ‘언어’속에 스며든 차별과 혐오는 피해갈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언어’와 관련된, 또 번복해서 싸울 의지를 간직하는 것에 대해 저자는 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 뒤부터 강도 높은 언어훈련은 계속되었다. 여성들에게 ‘꽃’에 관련한 비유 사용하지 않기, 청소년들에게 ‘애들’이라든가 ‘친구들’이라는 표현 스지 않기, 식당에 가서 ‘이모’라고 부르지 않기, 습관적으로 욕하지 않기, 외모와 관련해서 말하지 않기…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다르게 말하는 방식을 얻음으로써 내가 언어를 돌보고, 언어도 나를 돌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남성-이성애자-비장애인으로 살아가며 한 사람을과 연을 맺고, 혼인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기르는 과정의 목차에서도 인상깊은 부분이 산더미다. 줍고 싶은 문장 또한 많았기에 하이라이트를 쳐놓고 생각날때마다 다시 읽는중이다. 특별한 문장수집가는 아니지만, 분명 내 정신을 꿰뚫는 문장은 만나게 되면 두고두고 간직하는 편이다.


 저자는 놀랄정도로 한국사회가여성과 육아에 대해 관심이 없음을 또한 지적하고 있다. 관련 법, 인식, 제도 등 뭐 하나 제대로 되있는게 없다. 아이는 온 마을, 즉 사회가 키운다고 했던가. ‘돌봄’은 한 가정에서 뿐만이 아니라 임신부터 출산 그리고 육아, 성장 모든것을 일컫는다.

임신을 하고 난 뒤 우리가 놀란 것이 있다.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해 거의 모른다는 것.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놀라울 정도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모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마을이 해체된 이후의 세계에 살았던 우리는 옆집 아이를 만날 수 없었고, 돌봄의 가치에 대해 교육받지 못해 우리의 시선은 돌봄이 있는 곳과 접속할 시공간이 없었다. 그러니 이 지경이지.



 이 시대의 시인으로서, 아버지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연대하고 살아가며 겪은 한 사람의 이야기. 한 책 속에 한 남성의 인생이 축약되어 담겨있는 만큼, 사랑하는 주변 남성들에게 건네주고 싶은 책이다. 그들과 함께 연대하며 살아가는 행복한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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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x0.jpg (조한혜정 교수, 김현 시인 추천) 이성애자-비장애인-남성으로서, 남성들 속에서 느껴온 경쟁, 살기, 여성혐오 등에 근원적인 물음표를 붙이며 오롯한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애인’으로서, 가정의 ‘집사람’으로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세상은 평등해야 한다고 외치는 ‘페미니스트’로서 살아온 이야기. [...] 이처럼 중요한 ‘언어’와 관련된, 또 번복해서 싸울 의지를 간직하는 것에 대해 저자는 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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