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1984라는 책을 읽으면서 "동물농장", "위대한 개츠비", "세일즈 맨의 죽음" 등 다양한 책들을 떠올렸다. 위대한 개츠비는 무미건조하고 정형화된 사회 속에서 유일하게 사랑을 추구했던 이야기를 담고있고, 어느 세일즈 맨의 죽음은 경제 대공황 속에서 사람이 되지 못하고, 사회의 한 부품이 된 세일즈 맨의 죽음을 담아내고 있다. 동물농장은 인간의 권력욕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 세 권의 책의 공통점은 작중 인물들이 모두 사회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 사회가 부정적인 상황과 어감으로 서술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1984 또한 이런 책들과 디스토피아적 사회 맥락을 함께 한다. 오히려 극단적인 억압 사회를 소설의 배경으로 설정함으로써 거대한 권력 속의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드러내며, 그 속에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던진다.
저항적 개인의 탄생
윈스턴은 오세아니아국의 사람이다. 작중 세계는 오세아니아를 포함한 3개의 거대 국가로 나누어져 전쟁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윈스턴은 이런 상황의 사람으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의 억압체제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감정을 표시하지 않은 채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일련의 계기 (줄리아를 만나고, 일기장을 쓰는)를 통해, 체제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오블리비언의 함정에 빠져 고문을 받고 세뇌를 받게 되고, 결국 다시 기존의 지배체제에 굴복하여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가게 된다.
1984의 가장 큰 물음은 기득권층이 지배하는 사회와 개인에 대한 대결구도(관계)에 대한 의문이다. 소설 속에서 지배계층으로 드러나는 사람들은 윈스턴이나 일반 노동계층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 하층민을 죽이는 로켓 폭탄이나 끊임없는 "이분 간 증오의 시간",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텔레스크린"과 "전쟁"은 많은 사람들을 통제하고, 사회에 항거할 수 없는 인간으로 만든다.
체제에 거슬리거나 반항을 하는 사람들이 텔레스크린 혹은 마이크로폰을 통해 발견이 되면, 어디론가 잡혀가고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기록은 지워진다. 애초에 그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모든 기록이 바뀐다. 그 와중에 벌어지는 전쟁과 폭탄은 생존에 대한 공포감을 야기하여 하나의 체제하에 사람들을 결속하게 만든다. 어쩌면 역사도 기록이 지워진 사람들 처럼 지워지고 조작된 것일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 돼지 같은 놈들하고는 안 했어요. 그놈들은 기회만 있으면 하려고들 야단이죠." -p177
"모두 내부 당원용 물건이에요. 그 돼지 같은 놈들은 없는 게 없어요." -p200
"우리는 텔레스크린을 끌 수 있소. 그 정도 특권쯤은 갖고 있지요." -p239
누군가에겐 유토피아
위의 세 문장과, 소설 속에서 보편적으로 벌어지는 억압의 상황을 비교할 때, 기득권층은 상당히 많은 혜택을 누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많은 것을 완벽하게 억압해야 한다는 논리가 소설 속에서 실제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영국식 사회주의가 지배하기 이전의 삶을 살고 있다. 기득권층의 일부로 표현되는 오블리비언의 집에는, 수많은 예술품과 문학, 금지 도서들이 허용되어 있고 오블리비언은 이것을 합리화를 통해 자신의 권리로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블리비언이 가지고 있는 것을 추구하는, 윈스턴은 사랑의 가치에 눈을 뜨고, 인간적 삶에 대해 눈을 뜬다. 그가 항상 지배체제 이전의 어릴 적의 기억에 대해 늘 떠올리거나,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하는 모습, 자신의 생각은 건드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모습은 빅브라더가 지향하는 방향과 많이 다르다. 오블리비언은 윈스턴에게 "최후의 인간"이라는 칭호를 붙여준다. 이 칭호는 감정을 절제하고 통제하에서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유일하게 인간의 감정에 충실한 윈스턴에게 붙여진 상징적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거대한 사회 속에 저항적 개인이 탄생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윈스턴은 결국 사회에 굴복하여 전쟁 승전보에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여주며 소설이 끝난다. 이 웃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빅브라더로 대표되는 사회에 대한 개인의 도전이 실패했음을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사회에 굴복하게 된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조적인 웃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1984 속 사회의 모습은 이를 통해 완벽한 디스토피아로 거듭난다.
완벽한 디스토피아
같은 작가가 쓴 다른 작품인 동물농장도 1984와 비슷한 맥락으로 줄거리가 전개된다. 동물농장에서는 돼지들이 새로운 기득권층이 되면서, 결국 인간이 지배하던 시절과 똑같아졌다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1984의 기득권층이 자유로운 삶을 누리던 것은, 동물농장의 돼지들이 계층을 만들고 지배 구조를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모습을 보인다.
나는 끊임없이 기득권층과 내부 당원들이 "돼지"로 언급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1984 이후에 동물농장이 나왔던 것을 통해, 조지 오웰이 1984의 빅 브라더와 윈스턴의 마지막 웃음에 대한 대답을 동물농장에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바뀌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자조적인 웃음이었을 것이다. 저항적 개인이 저항에 성공하면 그가 원하는 유토피아가 생기지만, 그 유토피아는 또 누군가에게는 디스토피아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듯 하다. 이를 통해 권력에 대한 무한한 불신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윈스턴은 사회 개혁에 실패하였지만, 윈스턴이 사회 개혁에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결국 윈스턴 또한 기득권층이 될 것이라는 암시라고 생각한다. 나폴레옹이 9마리의 개를 거느렸듯이, 오세아니아국은 사상경찰을 거느리고 있다.
이렇게 해석을 하면, "최후의 인간"은 없어지고, 완벽한 디스토피아만이 남게 된다. 최후의 인간이란 자신이 어느 위치에, 어느 상황에 있든 자신의 인간다움을 지켜야 하는 것이 맞지만. 결국 개인이 사회에 굴복하거나, 개인이 새로운 억압 사회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참 소름 돋았던 것은, 1984 속 반역자 골드스타인의 저서 속에도 이러한 논리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결국 조지 오웰이 보았던 세상은 최후의 인간도, 권력의 소멸도 없는 완벽한 디스토피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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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인간이라...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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