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 이코노미 디자인에서 가장 핫한 주제는 ‘토큰 모델’이다. 인플레이션 토큰으로 할건지 ‘mint&burn’ 모델로 할건지, 채굴자를 둘 건지 말건지, 그 토큰을 어떤 용도로 사용하게 할 것인지 등 다양한 토큰 모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요즘은 ICO 토큰세일 기법에 대한 것도 관심을 모으는 주제다. 가상화폐가 가진 유연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화폐 추구의 동기’를 토큰 이코노미에 필요한 행위(Activity)로 바꾸게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이 쌓인 결과다.
그러나 ‘토큰 모델’은 토큰 이코노미 설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꽃’이나 ‘열매’와 같은 것이다. 다른 행위자(Actor)가 꿀을 먹기 위해 자신의 수정에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게 만들고, 씨앗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열매의 과육을 맛있게 익히는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의 전략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에게 유용성을 주는 것은 ‘아름다운 꽃’과 ‘맛있는 열매’일 수 있다. 그러나 토큰 이코노미를 설계하는 설계자의 관점은 ‘아름다운 꽃’이나 ‘맛있는 열매’에 매몰되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토큰 이코노미 설계의 목적은 꽃과 열매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른 행위자들의 이익 추구 동기를 행위로 바꾸어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토큰 이코노미 설계자는 감히 ‘창조주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성서에서 창조주는 6일 간 만물을 창조하였는데, 거기에 기술된 Actor들을 보면 ‘창조주의 관점’을 배우는데 몇 가지 팁과 단서가 들어있다.
첫째날에 ‘빛’을 만들었다
‘빛’은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볼 수 있는 것으로, ‘낮과 밤’을 나누는 기준선으로서의 역할도 가지고 있다. 이는 토큰 이코노미에서 보자면 ‘신뢰’의 원천인 블럭이라고 할 수 있다. 블럭은 ‘온체인’과 ‘오프체인’을 나누는 기준의 역할도 하고 있다. 모든 ‘신뢰’는 ‘온체인’에서 비롯된 것이고 ‘온체인’(천상계)은 ‘완전하다’는 관념도 함께 태어난다. 그리고 이것은 곧 ‘창조주’ 자신에 대한 관념도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이러한 관념은 깨져버렸다. 천상계를 관찰하는 망원경에 의해 드러난 천체의 불완전성(완전한 구가 아님)과 별의 궤도가 ‘완전성의 상징인 원’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그랬던 것처럼, 블록에 대한 ‘공격자’를 막을 방법이 없다면 다 허사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이제 첫날 창조한 것을 방어할 메카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결코 ‘신뢰’의 원천이 부정될 수 없는 원인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온체인’과 ‘오프체인’을 분리하는 것이다. 하늘의 물과 땅의 물을 분리함으로써 ‘온체인’은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둘쨋날 창조주는 그래서 ‘합의 알고리즘’을 만든다. 채굴자들에 의해 합의가 이루어진 신뢰는 ‘온체인’에 머무르나, 합의에 실패한 신뢰는 ‘오프체인’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창조주 다음에 창조된 행위자(Actor)는 ‘채굴자’다.
하지만 채굴자들이 지속적으로 ‘합의’에 참여할 지는 알 수 없다. 채굴자들에게 주어야 할 보상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푸드 시스템의 출발점인 식물이다. 식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이 뿌리를 내릴 육지와 그 육지로 물을 공급하는 원천이 될 바다가 필요하다. 채굴 보상과 가상화폐가 탄생한 것이 제 3일의 일이다.
4일에서 6일까지는 생육하고 번성하는데 필요한 행위자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7일째에 ‘창조의 언약’(The Creation Covenant)을 주셨는데 이는 ‘온체인’의 신뢰와 ‘오프체인’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스마트 계약’을 통해서만 ‘오프체인’의 결정은 ‘온체인’ 안의 신뢰성을 얻을 수 있다. ‘온체인’과의 연결을 놓치지 말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이 되었다.
4일에서 6일까지의 창조와 멀티토큰 이코노미
창조의 빅 픽쳐는 우리가 설계해야 하는 토큰 이코노미의 빅 픽쳐와 유사하다. 그러나 성서의 결론은 사람으로의 중앙화라는 결론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토큰 이코노미 설계와 약간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창조 이야기에서 나온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창조주가 만든 것은 이것이 탈중앙화된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창조의 프로토콜’에 의해 각자의 생존을 추구하는 행위자들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내는 행위의 결과물을 유용하게 사용하게 되며, 이 시스템을 ‘유지’하거나 ‘관리’하기 위해 사람이 수고를 하거나 돈을 쓰는 것이 아니다. 식물이나 동물의 행위는 창조의 프로토콜 안에 들어있는 보상 체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사람들이 따로 보상해서 이끌어낸 행위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성서’라는 화이트페이퍼는 ‘사람’을 위해 쓰여진 탓에, 다른 행위자들이 어떤 행위에 대해 어떤 보상을 받으며 각자의 이코노미 순환을 완성시키는지 잘 드러나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창조로부터 토큰 이코노미 설계의 ‘창조주적 관점’을 배우려는 우리는 4일에서 6일 사이에 창조된 행위자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이제 ‘성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
엄밀하게 본다면 성서에서 그려진 창조는 ‘멀티토큰 이코노미’라고 볼 수 있다. 즉, 각 행위자들은 서로 다른 토큰으로 보상을 받으며, 각각의 토큰은 독자적으로 순환과 균형을 만들며 완결적인 이코노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서로의 토큰 이코노미에 대해 ‘하나의 행위자’처럼 기여한다. 행위자네트워크이론에서는 이를 ‘결절화’(punctualization)이라고 하는데, ‘이종적인 네트워크’가 다른 네트워크 안에서는 ‘하나의 행위자’처럼 축약되는 양상을 뜻한다. 그러나 ‘성서’는 오직 ‘사람’을 중심으로 한 행위자네트워크를 기술(description)한 것이기 때문에, 성서의 관점에서는 다른 행위자네트워크인 ‘식물의 이코노미’나 ‘동물의 이코노미’는 그냥 외부로부터 주어진 하나의 ‘행위자’처럼 작동한다.
그런데 ‘성서의 창조’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토큰 이코노미를 설계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준다. 그것은 모든 공개 블록체인은 근본적으로는 ‘멀티토큰 이코노미’라는 점이다. 현실의 비트코인 채굴자는 비트코인 네트워크 안에서 보자면 ‘비트코인’ 보상을 추구하는 행위자로 보이지만, 그들의 실체는 ‘비트코인’을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팔아서 ‘법정화폐 이코노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다양한 법정화폐 경제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비트코인이 창조한 이코노미는 최소 수십 종의 토큰이 얽혀 있는 ‘멀티토큰 이코노미’다.
토큰 이코노미 설계를 위해 어떤 행위자를 선택할 것인가?
토큰 이코노미를 설계하는 것은 결국 이코노미를 지탱하는 핵심적 행위자를 선택하고, 이 행위자들이 각각 자신의 보상 추구 동기로 ‘행위’(Activity)를 해야 하고, ‘보상’이 이 ‘행위자’와 ‘행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이 세 문제는 서로 되먹임(feedback) 구조로 얽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토큰 이코노미 설계를 위해 ‘행위자’를 선택하는 것은 단번에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다.
그런 이유에서 설계자는 일단 설계 방법적으로 ‘행위자’를 선택해서 접근해야 한다. 이 말의 의미는 일단 눈에 띠는 행위자를 하나 선택해서 행위자에게 요구되는 ‘행위’와 그 ‘행위에 대한 보상’을 부여하여 이것이 ‘행위자의 동기를 충족시키는가’와 ‘보상에 의해 행위와 행위자의 지속적 재생산’이 가능한가를 살펴보는 순환적 설계 과정을 통해 ‘행위자’들을 다듬어 나가는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설계 방법적으로’ 선택할 행위자는 어떻게 발굴해야 할까?
이를 위해서는 토큰 이코노미를 구축하려는 대상이 되는 생태계의 경쟁적 혹은 진화적 위치를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 중앙화된 생태계의 대체 : 경쟁적 대체, 진화적 대체(Reverse ICO)
- 중앙화된 경제로는 성립될 수 없는 생태계의 창조 : 잠재된 가치의 산업화, 분산된 경제의 가상화폐 기반 생태계 통합
대개 우리가 어떤 토큰 이코노미를 설계하는 것은 이 두 분류에 속하는 대상에 대한 것이다.(물론 이 분류에 속하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전자는 상대적으로 출발점이 되는 ‘행위자’를 선택하는 것 용이하다. 기존 생태계 내에서 ‘초과 이익을 집중시키는 중앙 행위자’의 행위와 기여를 프로토콜로 분산시키고, 이 중앙 행위자가 제시한 ‘지시’나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여하고 이들이 제시한 ‘보상체계’에 따라 보상을 받던 ‘주변부 행위자’들 중에서 생태계의 가치 창출에 결정적 기여를 하는 행위자들을 선택하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동통신 산업은 일단 ‘중앙 행위자’인 이통사를 들어내서 ‘프로토콜화’ 한다.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역할, 단말기와 회선 서비스를 유통하는 역할, 가입자를 유치(Acquisition)하고 유지(Retention)하는 역할, 이를 위한 자본을 조달하는 역할, 무선 주파수를 정부로부터 획득하고 유지하는 역할 등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언제나 ‘극단주의’를 피하는 것은 중요하다. 중앙 행위자를 들어내는 것이 중앙 행위자가 했던 모든 역할을 다 탈중앙화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 중 탈중앙화가 더 효율적인 요소로 ‘제한하여’ 탈중앙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나면 이통사가 가진 역할 중에서 주변부 행위자들의 기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영역을 찾아내고, 그 중에서도 이통사가 가장 많은 돈을 퍼붓고 있는 영역의 핵심적 행위자를 찾아내야 한다. 이 행위자들에게 어떤 행위를 부여하고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를 설계하는 것이 최적의 행위자를 찾는 출발점이자 보상 체계를 설계하는 출발점이 된다.
하지만 후자는 문제가 좀 복잡하다. 왜냐하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행위자를 가상적으로 가정해야하므로, 그런 행위자가 형성되지 않을 가능성을 위험으로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생태계의 끝에 달려 있는 잎(leaf)들을 잘 관찰해야 한다. 잎은 자체로 가치를 생산하는 ‘광합성’에 참여하면서 보상을 받는 가장 바깥 노드인데, 이들이 매 순간 해야하는 노력들을 잘 살펴보고 생태계에서 공급된다면 이들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요소들을 찾아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전혀 중앙화된 생태계가 만들어져 있지 않은 뷰티샵을 대상으로 한다면, 우리는 뷰티샵이 어떤 투자를 해야하고, 어떤 요소로 서비스의 품질을 만들어 내며, 핵심적 기능이 아니지만 갖고 있을 수 밖에 없는 프로세스나 자산은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프랜차이즈 형태로 중앙화된 이코노미를 시도했던 사례들을 분석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적당한 어드바이저의 영입도 필요하다. 대개 이런 사례들은 분석해 보면 실제로 ‘잎’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문제는 ‘중앙 행위자가 가져가던 초과 이익이 없다면 어떤 재원으로 보상을 하게 되는가?’하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비용’ 계정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비용’ 중에서 전체 비용 대비 비중이 클 뿐아니라 매출 대비 비중도 큰 ‘비용’이 있다면, 그것을 블록체인을 활용하여 ‘효율화’할 방안이 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당연히 ‘중앙화된 생태계를 만들려는 행위자’들이 실패한 지점도 살펴야 한다. 이 경우 종종 최초의 중요 행위자는 ‘비용’ 계정에서 태어난다.
행위자들의 숨은 네트워크(Hidden Network)
앞서 언급한 대로, 모든 토큰 이코노미는 ‘멀티토큰 이코노미’다. 따라서 중요한 행위자들을 분석할 때는 언제나 그들 뒤에 숨어있는 ‘숨은 네트워크’(Hidden Network)를 살펴보아야 한다. 럭키한 케이스라면 이들에게 ‘법정화폐 경제’ 외의 다른 숨은 네트워크가 없지만, 복잡한 경우에는 기껏 찾아낸 중요 ‘주변부 행위자’가 ‘규제’나 ‘원재료의 독점적 공급자’ 같은 ‘또 다른 중앙화된 행위자’들이 지배하는 네트워크에 포함된 행위자일 수 있다.
이 경우 토큰 이코노미 설계자는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즉 그 행위자가 속한 ‘숨은 네트워크’의 존재를 ‘무시’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무시’를 선택하고, ‘보상에 의한 연결’ 정도가 필요하다면 그것을 선택할 수도 있고, 극단적 경우에는 그 네트워크로부터 ‘분리’를 선택해야 한다. 만약 ‘분리’를 선택한다면, 그 네트워크로부터 분리된 행위자가 새로 설계하는 토큰 이코노미로 옮겨왔을 때 기대할 수 있는 보상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커져야 하고, ‘숨은 네트워크’로부터 제공받던 자원이나 인프라 등이 토큰 이코노미를 통해 공급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서 넣어줘야 한다.
토큰 이코노미 설계에서 기여와 보상의 체계 안에 행위자의 종류가 너무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나, ‘분리’의 경우 행위자의 종류가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 된다. 하지만 잘 고민해서 최소화해야 한다.
블록체인 생태계 안에 토큰 이코노미 설계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으며, 특히 기술적 영역의 진화 속도는 매우 경이롭다. 그러나 실제로 일을 하려고 하면, ‘온라인 서비스 기획’을 했던 경험 정도로는 ‘토큰 이코노미’를 설계할 수 있는 크립토 이코노미스트 역할을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 이 글이 크립토 이코노미스트를 지향하는 ‘동지’들에게 작으나마 도움이 되길 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생각이 막 커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네요. 이래서 블록체인 하는가봐요ㅎ
재미있으셨다니 감사^^
흥미로운 관점입니다, 천지창조에 빗대시다니.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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